한국당이 경제 비판할 수 있나[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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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정쟁하느라 법안 마비… 딴지걸기 말고 경제 위해 뭘했나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8월 작고한 벤처업계 대부 이민화 회장이 최근 몇 년간 ‘규제개혁’을 외치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규제가 ‘데이터’다. 그는 “빅데이터가 없으면 인공지능(AI)은 굶고 4차 산업혁명은 물 건너간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데이터는 인공지능 핀테크 자율주행차 스마트헬스케어 등 미래 산업의 근간이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대거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맞춤형 헬스케어, 고부가 금융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보다 뒤처진 데이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 여당이 지난해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일명 ‘데이터 3법’ 을 발의했지만 1년 내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여야가 선거법 개정부터 조국 사태까지 정쟁만 하느라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제 민생 법안들까지 올스톱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체제를 가리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은 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개혁과 경제활성화 정책들도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현실에서 전혀 힘을 쓸 수 없다. 여야 의견차가 큰 법안들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국회에는 데이터 3법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산업특별법,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벤처투자촉진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농가소득보전법 등 여야가 바로 처리하거나 조금만 노력하면 합의할 수 있는 법안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이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모두 폐기돼 내년 4월 총선으로 구성될 21대 국회에서 새로 발의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말로만 민생과 규제혁신을 외치면서 적극적으로 야당을 끌어안고 설득하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역시 “경제 파탄”이라며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렸지 정작 자신들은 개혁 법안의 발목을 잡는 것 외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고 일본의 수출 규제로 대책이 급했던 시기에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은 한국당이 느닷없이 “경제청문회를 하자” 등으로 붙잡아 사상 최장 수준인 100일 만에 늑장 통과했다. 여야 의견 차이가 별로 없는 규제개혁 법안들까지 통과가 안 되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국회를 쫓아다니면서 “경제는 버린 자식이냐”고 호소했지만 지금까지도 별 진전이 없다.

한국당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제도와 국회의 앞날이 걸린 선거법을 제1야당과 합의하지 않고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에 태웠으니 “이게 민주주의냐”고 할 법하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편은 애초에 한국당도 논의하기로 해놓고 계속 딴지를 걸며 시간만 끄니 다른 야당들이 여당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 아닌가. 한국당은 지난해 말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발표한 합의문에선 제1항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자’며 극단적인 주장들을 오락가락한다. 명색이 의석수 110석의 거대 야당이 경제부터 선거제도까지 생산적인 대안을 내놓고 정치를 이끌기는커녕 사사건건 발목만 잡으니 다른 야당들한테도 지지를 못 받는 것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50%로, 긍정 평가 41%보다 높다. 그런데도 한국당 지지도는 26%로 더불어민주당 지지도(37%)보다 낮은 것은 국민들이 정부 여당에 불만이 많지만 한국당도 미더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대만 하는 것이 야당의 역할은 아니다. 한국당이 경제 민생 같은 분야에서는 앞장서 법안을 논의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자유한국당#규제개혁#패스트트랙#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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