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슈는 역사가 아니라 경제다[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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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日비판하면서 경제피해도 우려
文정부, 경제위기해법에 승부 걸어야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일본이 한국을 겨냥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로 사실상 ‘경제전쟁’을 선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공고해지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지지율도 큰 등락 없이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외부와 맞서는 대결구도가 선명해질수록 현직 대통령에게 힘이 실리는 ‘안보 결집 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2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하면서 이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갤럽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한일 분쟁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일 분쟁에 대한 정부 대응이 ‘잘한다’ 50%, ‘잘못한다’ 36%로 정부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수치가 높았다. 정부 대응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됐을 것이다. 반면 ‘이번 분쟁으로 어느 쪽 피해가 더 클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는 한국 54%, 일본 27%로 나타났다. 일반인 상대 조사라서 전문적 예측은 아니겠지만 일반인들은 이 갈등이 지속되면 한국의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을 응징하는 정부 대응에 공감하면서도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복합적 심리 상태라고 분석할 수 있다.

한일 관계는 그동안 순항과 갈등의 반복이었다. 갈등의 쟁점은 대부분 독도 영유권 문제나 과거사 관련 망언, 교과서 문제 등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다르다. 밑바탕엔 한일 간 역사적 구원(舊怨)과 외교 문제가 깔려 있지만 경제전쟁이 전면에 부상한 이례적인 상황이다. 정치권이 경제 이슈에 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지난달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한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는 ‘역사·경제 문제를 분리한 원칙적 대응을 선호하는 여론에 비춰 볼 때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목이 국익이 걸린 문제를 친일-반일 프레임의 정치공학으로 접근했다는 호된 비판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분석 자체가 여론 흐름을 단선적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데이터 해석은 자유지만 여론조사 데이터는 종합적으로 읽어야 한다. 보고 싶은 데이터만 보고 있으면 전체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갤럽 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정부의 경제 도발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경제 도발의 파장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국민들은 이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도 지켜볼 것이다. 민주연구원 보고서는 중층적인 여론을 균형 있게 짚어내지 못한 것 같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었다. 걸프전 직후 그의 지지율은 한때 미국 역대 최고인 9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국내 정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정치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침체된 경제 이슈를 집요하게 파고든 클린턴의 선거 전략이 주효했다. 당시 캠페인 문구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김종필은 생전에 ‘국민은 하나만 잘못해도 물어뜯는 호랑이’라고 했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하나같이 민심은 언제든지 움직이고 바뀔 수 있다는 경고다. 정부는 단기간의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경제전쟁 해법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경제정책 기조를 수정하고, 초당적인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는 등 발상의 대전환도 해야 한다. 결국 내년 총선은 경제 이슈가 맞붙는 무대가 될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한일 분쟁#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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