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야 할 정보 vs 듣고 싶은 정보[오늘과 내일/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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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충성파 기용한 트럼프… 미국 외교정책 신뢰도에도 파장

김영식 국제부장
김영식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지명한 존 래트클리프 하원의원(54·공화·텍사스)을 두고 정보기관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 정치권은 정보 분야 경험이 없는 그가 맹목적으로 트럼프에게 충성한다는 이유로 선택됐다고 평가한다. 북한 핵개발 문제, 이란, 시리아 등 핵심 외교안보 사안을 두고 사사건건 트럼프와 충돌했던 코츠와 달리 정치적 행보로 정보기관의 독립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 미국 정보기관은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의 정보만 공급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래트클리프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더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래트클리프는 하원 법사위원 시절이던 2016년 미국 대선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트럼프 진영과 러시아의 연계 의혹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두고 대놓고 비난했다.

그의 행보가 우려되는 것은 과거 행적 때문이기도 하다. 래트클리프는 FBI 내부에 트럼프를 반대하는 ‘비밀결사’가 존재한다는 음모론을 제시했다. FBI에서 트럼프와 러시아 내통 스캔들 관련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피터 스트럭 수사관과 리사 페이지 FBI 변호사를 싸잡아 비난하며 비밀결사 의혹을 확산시킨 장본인이 바로 래트클리프다.

래트클리프는 2018년 1월 22일 페이지와 스트럭의 문자메시지를 직접 봤다고 폭스뉴스에서 주장했다. 특히 연인 관계이던 두 사람의 문자메시지는 FBI 내부의 반(反)트럼프 비밀결사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폭스뉴스 앵커 숀 해니티도 ‘FBI 음모?’라는 트윗을 올렸고, 다음 날 론 존슨 상원의원은 이에 더해 “FBI 비밀결사의 회동을 알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하지만 그 다음 날 ABC 방송이 문자메시지 전문을 공개하면서 이런 주장은 맥이 빠졌다. 전문에 나온 얘기는 페이지가 러시아 수사를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근육질 몸매가 담긴 달력을 전달하면서 남겼던 시시껄렁한 농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페이지는 스트럭에게 “(다른 동료들에게) 달력 나눠줄 거야? 좀 짜증나지만, 아마도 이게 우리 첫 비밀결사의 만남이 되겠지”라고 메시지를 남겼던 것. 문자메시지의 일부를 과장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보수 매체에서도 비밀결사 얘기는 쑥 들어갔고, 트윗을 올렸던 이들도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그나마 래트클리프가 정보 관련 업무에 가장 유사하게 접근했던 경험은 과거 테러 담당 검사 시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관련 수사를 했던 것이지만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정보기관 17곳의 수장에 올랐으니 정보 관련 종사자들이 걱정할 만도 하다.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뮬러 전 특별검사가 “내년 대선에서도 러시아의 개입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을 두고 “근거가 없다”고 몰아붙인 일이 트럼프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정보기관이 수요자인 최고지도자의 요구에 맞는 정보나 첩보를 생산하는 게 생소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입맛에만 맞는 요구에 부응할 자세가 충만해 보이는 정보기관 수장이 들어오는 것은 다른 얘기다. 들어야 할 정보를 외면하고, 듣고 싶은 정보만 챙긴다면…. 정보기관의 독립성은 물론이고, 향후 국제사회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포린폴리시는 최근 워싱턴의 적대적인 이란 행보가 의문스럽게 비쳐지는 가운데 래트클리프 지명은 미국의 외교정책 신뢰도를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디 이란 문제뿐이랴. 앞날이 뻔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
#도널드 트럼프#미국 외교정책#존 래트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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