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영식]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선거동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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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지층 결집만 집중하는 정치 협력
지역 안정 위협하는 해악으로 이어진다

김영식 국제부장
김영식 국제부장
이쯤 되면 가히 ‘선거동맹’이라 부를 만하다.

양복과 해외여행권 등 고액의 뇌물 수수 및 배임 등 부패 혐의로 무너지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끈한 ‘화력’ 지원으로 살아났다. 네타냐후 총리는 9일 실시된 총선에서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전체 120석 중 35석을 확보했다. 보수우파 정당 연정으로 65석을 얻어 재집권 기틀도 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병합을 인정하고 공식 서명하면서 공세적 지원을 했다. 8일엔 이스라엘의 숙적인 이란의 ‘이란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이게 무슨 지원이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이란과의 대결을 무릅쓰고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층인 이스라엘 보수층 결집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외부와의 갈등을 특정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무상’ 지원만 한 것은 아니다. 네타냐후를 도움으로써 2020년 대선에서 미국 내 유대계 표를 얻어낼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 내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유대인의 71%가 트럼프 대통령의 상대이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투표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대적인 이스라엘 지원은 민주당과 유대계 간에 민감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 틈을 타고 들어간 것이다. 무슬림 여성 최초로 미 하원에 들어간 일한 오마르 의원(37·민주·미네소타)은 2월 초 미국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를 비난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는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AIPAC의 돈 때문”이라는 취지로 트윗을 올렸다가 역풍을 맞았다. 애리 플라이셔 전 백악관 대변인은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유대인 표심에 공화당이 침투할 수 있는 사이클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민주당과 유대계의 갈등 기류를 잘 포착한 것이다.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자금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대계의 지지 확보가 재선의 핵심임을 꿰뚫어본 것이다.

서로의 필요성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일까. 외부 침공이 아니라 스스로의 부패 문제로 무너지던 ‘동지’를 살려낸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와 이스라엘 선거 결과를 보면 국가 간 ‘군사동맹’보다 지도자 간 ‘선거동맹’이 더욱 강력한 힘이라는 현상을 잘 볼 수 있다.

지금은 과거에 통용되던 국제질서가 그 위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질리도록 듣고 보는 시기다.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군사적 대결도 불사할 태세인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국가들의 이해관계나 우려, 지역 안정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이익, 한발 더 나아가 정권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지지층만 겨냥하는 정책이 서슴지 않고 나오는 시대를 한발 더 앞당겼다. 네타냐후의 선거 공약이던 요르단 서안 정착촌 합병까지 현실화한다면 중동 안정의 길잡이로 여겨졌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해법도 과거로 사라질 것이다. 중동 국가들을 갈라놓은 마당에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비밀리에 마련 중이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안이 무슨 효용성이 있을까. 정치적 이해관계만 반영된 ‘선거동맹’은 아무리 봐도 지구촌의 공동이익을 해치는 해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
#도널드 트럼프#베냐민 네타냐후#선거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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