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진석]불안을 공포로 키우지 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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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최근 미세먼지가 짙게 오래 지속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국민들의 불안은 공포로 바뀌는 듯하다. 공기청정기로도 모자라 산소발생기까지 구입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이번 기회에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과격한 대안도 들려온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감정으로 불안을 꼽는다. 불안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건이 언제 어디서 오는지 모를 때 커진다. 그에 대처할 마땅한 방안마저 없으면 불안은 공포가 된다. 최근의 미세먼지 사태가 딱 그런 꼴이다. 언제 닥쳐올지 알기 힘들고, 닥쳐온 미세먼지를 불어낼 방법도 없다.

경기 침체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커지는 상황이다. 본보 취재팀이 군산·창원을 중심으로 둘러본 지방 경기는 불황이 악순환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기업들이 빠져나가면서 집값은 37개월째 연속 하락 중이고, 소비까지 얼어붙고 있었다. 지금 정부는 일자리 확대를 목숨처럼 여길 듯이 등장했지만 아직 희소식은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8%에서 2.6%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3%에서 2.1%까지 낮췄다. 물론 지금의 경기 침체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인 것은 아니다. 미세먼지가 편서풍이라는 자연 현상에 의해 우리에게 밀려오듯, 우리의 경기 침체도 경제 법칙에 따라 세계 경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책 불확실성을 줄여 경제 주체가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괴물이나 귀신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귀신의 등장 시기를 타이머로 정확하게 알려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는다.

경제 주체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되어가지만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두 번이나 놀란 소상공인들은 내년에 또 얼마나 오를지 불안해 장사가 잘되는 곳도 사업 확장을 겁낸다.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받는 중소기업들은 해외 수출품의 납기를 맞추지 못해 수십 년 단골의 해외 발주처를 일본이나 중국에 뺏길까 봐 두려워한다.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할 벤처 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업종이 언제 어디서 어떤 규제의 적용을 받을지 몰라 불안해한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이미 허가가 났던 사업이 뒤집히는 일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렌터카로 승차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던 ‘차차’는 국토교통부가 입장을 바꾸면서 결국 작년에 영업을 중단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생업을 잃게 되는 기업가와 직장인이 느낄 공포는 짐작조차 어렵다.

인지심리학에 따르면 개인의 마음에 불안이 깃들 때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예컨대 일요일 저녁 월요일 출근이 걱정된다면 막연하게 불안해하지 말고 다음 날 할 일을 차분하게 노트에 적어 보라고 심리학자들은 권한다. 해야 할 일을 가급적 단계별로 구분해서 기록하면 더 좋다. 이렇게 적다 보면 큰일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일이 확정되는 효과 때문에 안정을 얻게 된다. 다음 날 단계별로 일을 하나씩 해치우면서 작은 승리를 맛보는 건 덤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시행 이후 고용과 분배 지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고,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우리에게 중요한 수출도 3개월째 내리막길이다. 북핵에만 매달려서 국민의 불안을 달랠 순 없다. 정부도 할 일을 단계별로 잘게 나눠 적은 노트를 보여줘야 할 때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미세먼지#공기청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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