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지지층만 바라보면 트럼프와 뭣이 다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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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처음 봤을 때 누구 것인지 헷갈렸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을 한데 모은 정치분석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의 숫자를 보고서다. 지난해 12월 27일까지 집계된 누군가의 지지율 여론조사였는데 긍정 42.7%, 반대 52.2%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매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를 분석하고 있는 리얼미터의 최신 조사 결과와 비슷했다. 이 기관의 12월 27일 결과는 긍정 43.8%, 부정 51.6%였다. 한때 80%까지 접근했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트럼프 대통령과 어느덧 비슷한 수준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하락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놀라운 건 어떻게 트럼프가 지금까지 이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후 현 수준의 지지율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며 국제질서를 파괴해온 트럼프가 지지율을 유지하는 또 다른 ‘거래의 기술’은 뭘까. 기자는 초심(?)을 잊지 않았던 게 핵심이었다고 본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일성으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한 트럼프는 지금까지 백인 노동자를 축으로 한 콘크리트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왔다. 취임 후 단행한 무슬림 입국 제한 행정명령부터 최근 캐러밴(이주민 입국 행렬) 저지까지 ‘앵그리 화이트’의 분노를 더 태울 자극적 소재로 자신의 지지율을 지탱해 왔던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현재 지지율 추이는 트럼프의 그것과 엇비슷하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41.1%)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성 지지층만 남았다는 얘기다. 이런 문 대통령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지지층을 확장해 산토끼까지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지지층을 사수하는 집토끼 지키기에 나설 것인가. 전자(前者)는 취임 초기 야당, 국민과의 소통을 약속했던 초창기 문 대통령의 길이고 후자는 트럼프의 길이다.

유감스럽게도 문 대통령의 요즘 모습은 취임 초와는 거리가 있다. 변할 듯하면서도 어느덧 고개를 돌려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시장과 기업인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를 열고 약정휴일시간과 약정휴일수당만 산입에서 제외키로 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 의결해 버렸다. 문 대통령 말만 믿었던 경영계는 “기업의 경영권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고 하소연한다. 기업들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의 조속한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2월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논의를 일단 기다려보잔다. 그때까지 무슨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기보다는 지지층인 노동자층의 요구를 도저히 외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3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만나서는 혁신적 포용성장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천명하기도 했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에게 핵심 지지층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국정 동력을 유지할 마지막 버팀목 같은 존재다. 그렇다고 집권 3년 차인 문 대통령이 벌써부터 트럼프처럼 지지층만 보고 가는 건 너무 수세적이다. 더욱이 올해는 대형 선거가 없는 해. 집권 3년 차를 맞아 주요 국정 이슈의 성과를 내서 얼마든지 지지층을 확장할 수 있는, 문 대통령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도 대통령이 트럼프의 길을 가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문재인 대통령#도널드 트럼프#대통령 지지율#최저임금 인상#경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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