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獨 슈미텐서 다시 느낀 ‘최순실-정유라의 일장춘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5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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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특파원
동정민 특파원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차로 30~40분 거리의 슈미텐 지역은 산 속에 인구 2만 명이 흩어져서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동양인을 찾기도 힘든 이 곳을 지난 겨울 수많은 한국 기자들이 찾았다.

기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정유라 씨의 도피 행방을 쫓고 최순실 씨의 독일 재산을 추적하기 위해 지난해 겨울 이들 모녀가 소유하고 머물렀던 슈미텐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수차례 방문했다. 주민들의 눈초리는 굳게 닫힌 호텔 문만큼 싸늘했다. 한국 기자들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최 씨 관련 직원들이 호텔 안에서 개를 잡아먹었다고 믿는 주민도 많았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최근 다시 찾은 슈미텐은 완전히 평온을 되찾은 듯 했다.

새로 바뀐 타우누스 호텔
새로 바뀐 타우누스 호텔

주민들은 오랜만에 한국 기자를 보자 반가운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굳게 닫혀 있었던 타우누스 호텔의 문도 열려 있었다. 외경은 그대로였지만 이미 간판은 ‘루이스’로 바뀌어져 있었다. 최 씨가 호텔업과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겠다며 더블루케이와 비덱스포츠 사무실을 꾸렸고 이 안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일들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득했던 곳이다. 실제 들어가 보니 작은 방들이 이어지는 그냥 전형적인 소도시의 작은 호텔이었다.

2016년 6월23일 당시 비덱 타우누스 호텔 개업 파티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그 사진 안에는 꽃무늬 민소매 티와 빨간 치마로 한껏 멋을 부린 정유라 씨와 그 옆에서 뿌듯하게 웃고 있는 하얀색 자켓 차림의 최순실 씨, 그 외에 최 씨 모녀와 함께 일을 하던 이들 6명이 미소를 짓고 있다.

1년 6개월여 지난 지금 이들의 운명은 기구하다.

최 씨는 국정 농단의 중심에 서며 감옥에 들어가 있고, 승마 금메달리스트를 꿈꿨던 20대 초반의 정 씨는 부정입학이 드러나면서 학력이 중졸로 떨어진 채 무직이다.

최순실의 집사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은 사기 혐의로 적색수배령이 내려져 유럽 곳곳을 전전하며 도피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이름을 팔아 여기저기서 돈을 받은 흔적이 계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씨의 승마 코치 크리스티앙 캄플라데는 최 씨로부터 2016년 10월 비덱 스포츠 주식을 인수했다. 삼성의 후원금도 들어왔었고, 호텔 자산도 있는 비덱 스포츠를 통해 경영인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꿈꿨지만 사자마자 스캔들이 터지면서 회사는 망했다. 독일 정부로부터 세금 폭탄을 맞고 타우누스 호텔을 급하게 헐값에 팔아야 했고 인수한 지 7개월 만에 청산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캄플라데는 러시아에서 다른 승마 선수를 가르치고 있다. 캄플라데는 3일 전화통화에서 “아직 최 씨의 숨겨진 돈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기자가 묻자, “내가 돈이 있다면 왜 이 추운 겨울에 가장 추운 러시아에서 선수를 가르치고 있겠냐”고 대답했다. 스캔들 직전 자신에게 주식을 팔아넘긴 최 씨에 대한 적개심을 여전히 드러냈다.

아직 독일 곳곳에 최 씨의 재산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검찰이 18개월 째 최 씨 모녀와 관련자들을 자금 세탁 혐의로 수사하고 있으니 그 진실은 드러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다.

모두가 미소를 짓고 있던 타우누스 호텔 개업 파티 사진을 다시 보면서 ‘일장춘몽’(한바탕의 봄 꿈)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사진 속 그들은 모두 죗값을 치르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슈미텐의 독일 사람들은 이 사건을 빠르게 잊어가고 있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헛된 꿈을 꿨던 최 씨 모녀, 그리고 그 속에서 다른 욕심을 부린 주변인들의 결말은 허망하다 못해, 처절하기만 하다.

슈미텐=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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