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건혁]주형환의 ‘잘못된 침묵’… 해명도 잘못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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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혁·경제부
이건혁·경제부
“퇴임을 얼마 앞둔 장관으로서, 실무적으로 협의된 안건에 대해 ‘개인적 소견’을 개진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고민했다.”

20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을 결정한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공개된 뒤 그가 내놓은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반응이었다.

주 전 장관은 또 “당시 (국무회의) 안건은 (일시 중단 여부가 아니라) 공론화 관련이었다”고도 했다. 나중에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그의 말대로 이날 국무회의에서 진행된 원전 관련 논의 시간 상당 부분이 공론화위 문제였다.

하지만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공사를 계속하는 방안과 일시 중단하는 방안 등 두 가지가 있다”며 국무위원들의 선택을 요구하기도 해 주 전 장관의 해명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일시 중단을 지지하는 발언도 했다.

또 논의 과정에서 일시 중단의 문제점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건 주무 장관인 주 전 장관의 침묵에서 비롯됐다. 공사 일시 중단이 원전 안전성에 미칠 영향, 법적 절차적 정당성, 공사 중단에 따른 시공사 보상과 현장 근로자 고용 등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퇴임사에서 ‘(나는) 지난 정부에서 임명됐다’고 말했다. 침묵에 스스로 부여한 면죄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박근혜 정권 시절 임명된 장관들에게 “(여러분도) 엄연한 문재인 정부의 장관”이라며 자리에 있는 동안 끝까지 장관의 본분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 언급이다.

주 전 장관은 또 “새 정부의 신고리 5, 6호기 즉시 중단 공약을 산업부가 (새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공론화를 거쳐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로 늦췄다”는 말도 했다. 자신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겠지만 원전을 둘러싸고 현재 벌어지는 사회적인 갈등을 고려하면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의 퇴임사를 접하며,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공사는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를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게 가장 피해 규모가 작다’고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원전 공사 중단에 반대했던 자신의 소신을 꺾으며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판을 받았겠지만, 새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줬다는 명분은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수상한 침묵’은 명분도 실리도 잃고, ‘영혼도 주관도 없는 공무원’이란 비판만 남겼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주형환#탈원전#신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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