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신동진]‘삼성’ 약점 파고든 퀄컴의 억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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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진·산업부
신동진·산업부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삼성 간 커넥션을 들먹였다. 지난해 공정위가 퀄컴에 부과한 1조300억 원의 과징금이 삼성 로비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퀄컴은 21일 한국 법원에 공정위의 행정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그즈음 돈 로젠버그 퀄컴 법무총괄은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받고 있는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과 삼성의 유착 의혹이 언급됐다. 그동안 공정위 처분의 절차적 타당성만 문제 삼던 퀄컴이 공격 포인트를 또 하나 늘린 것이다.

특검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과 관련해 공정위가 삼성에 특혜를 줬는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은 이 합병으로 인해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했다. 공정위가 처분해야 할 지분 규모를 의도적으로 낮춰 삼성의 부담을 줄여줬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백번 양보해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퀄컴에 특허 로열티를 내는 삼성전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퀄컴이 언론을 통해 피해자인 양 나선 것은 국내 정치 상황을 이용한 교묘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퀄컴은 중국에서 2015년 반독점 규제당국으로부터 1조500억 원의 과징금을 받은 뒤 곧바로 수용했다. 결국 퀄컴의 도발은 국내에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의 잇단 ‘재벌 개혁’ 발언과 특검 수사로 국내 대기업들은 국내외에 ‘부패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구속되면서 이런 인식은 더 커졌다. 공정위와 보건복지부 등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른 정부 부처들의 신뢰도도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재계에서는 퀄컴이 이런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소송에서 이길 경우 미국, 유럽연합(EU), 대만 등 세계 각국에서 제기된 특허 남용 조사에서 조금은 유리해질 수 있어서다.

퀄컴의 이런 움직임은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기업들이 단순한 이미지 타격을 넘어 법적 분쟁에서도 발목이 잡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문회에 불려나와 망신을 당하고, 포승줄에 묶인 채 검찰에 수시로 소환되는 총수의 사진은 경쟁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기업인들의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그런 빌미부터 내주는 현실이 안타깝다.

신동진기자 shine@donga.com
#삼성#퀄컴#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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