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노지현]국가기록원, 왜 하필 지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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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사회부
노지현·사회부
국가기록원이 1960∼1990년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추진 계획을 4일 밝혔다.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필두로 이뤄낸 ‘한강의 기적’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부심을 느끼는 현대사다.

문제는 시기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 등재를 하필이면 그의 맏딸인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에 추진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느냐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가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과거에도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문화재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말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의 등재 신청 계획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자 야당은 “보수 정권이 박 전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려 한다”며 공세를 펼쳤고, 18대 대선 정국과 맞물려 우리 사회는 홍역을 치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세계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 시점에 세계를 이해하는 데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전 세계 역사와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한 기록 등 원칙적인 기준이 있다. 우리의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 동의보감 등이 그렇고, 법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마그나카르타(영국), 전통 의학서 황제내경(중국) 등도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높다.

현대사 관련 기록도 대상은 될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기록, 안네 프랑크의 일기 그리고 우리의 5·18민주화운동 기록물도 등재됐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도 자격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기뿐 아니라 관(官)이 주도한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학계에서는 “국가기록원은 조선시대 사관(史官)과 같은 곳인데 사관이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홍보하려는 것 자체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강의 기적은 몇 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퇴임 후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는 게 떳떳한 길이다.

노지현·사회부 isityou@donga.com
#국가기록원#인구#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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