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노지원]자화자찬으로 끝난 ‘성교육 표준안’ 공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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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원·정책사회부
노지원·정책사회부
15일 오후 2시 반 교육부가 성교육 표준안을 둘러싼 학교 당사자의 의견을 듣겠다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과 함께 공청회를 열었다. 교사와 학부모 190여 명이 모였다.

표준안은 양성평등의 취지를 훼손했다는 지적 외에도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등 비과학적 주장들이 담겼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많은 사람이 모여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할 기회였지만 토론자 구성부터 아쉬움을 남겼다. 토론자 7명 중 한 명은 지난 총선에서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장한 기독자유당 비례대표 후보였다. 그는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자료 48장 중 35장을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데 썼다. 표준안을 토대로 교사 지침서를 쓴 산부인과 의사도 있었다. 교육부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연 것인지, 비판받는 표준안 찬성 논리를 강화하려고 행사를 기획한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주최 측이 교사, 학부모의 의견을 듣기도 전에 표준안에 대한 학교의 만족도가 5점 만점에 4점 이상이라고 발표한 것도 공청회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표준안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홈페이지에 올려 둔 표준안과 교육 자료를 임시 삭제했다. 학교 성교육이 공백 상태인데 표준안 만족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의견을 들을 시간이 부족했다. 표준안으로 성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학생은 이 자리에 초대조차 되지 않았다. 공청회 마지막까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사람들은 행사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질문을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자 결국 사회자가 4명에게만 30분 동안 질문을 받았다. 이날 교육부 관계자는 3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공식 행사가 끝나자 소리 없이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교육부는 논란이 된 표준안을 만들었지만 공청회는 여정연에 맡기고 손을 놨다. 교육부 관계자는 “9월쯤 수정 표준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교육부의 행태로 볼 때 두 달 뒤 교육부가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을 보긴 쉽지 않을 듯하다.

노지원·정책사회부 zone@donga.com
#성교육#공청회#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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