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효주]광주 상처 건드리고 책임 없다는 보훈처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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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공수 시가행진’ 가벼운 처신… 논란 불거지자 ‘지방청 탓’만
결국 퍼레이드 무산… 軍 사기 꺾여

손효주·정치부
손효주·정치부
제11공수특전여단과 육군 31사단의 광주시내 ‘호국 보훈 퍼레이드’ 계획이 21일 논란 끝에 취소됐다. 5·18 관련 단체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11공수여단이 광주시내를 행진하는 것을 두고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불똥은 이 지역을 지켜온 향토사단인 31사단까지 튀었다. 지역 군부대 전체로 반발이 확산되면서 31사단 행진마저 불허된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7개 시도에서 주민, 참전용사, 지역 군부대 군인들이 어우러져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기획했다. 참전용사와 군인들의 자부심을 고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광주 행사는 무산됐고 주민들마저 지역 군을 외면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보훈처는 그 책임을 광주지방보훈청(광주청)으로 돌렸다. 4월 31사단과 광주청, 광주시가 모여 퍼레이드 참여 부대를 정할 당시 광주청이 “11공수여단 참가는 광주지역 정서상 안 된다”는 입장을 보훈처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야 3당이 이와 관련해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 발의를 예고하자 오히려 “지역축제를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굉장히 유감을 표명한다”며 날을 세웠다.

보훈처는 “2013년에 같은 행진을 했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정무적 감각’의 결핍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박 처장은 불과 한 달 전 5·18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문제로 광주 지역 주민, 관련 단체와 갈등을 빚었다. 불필요한 잡음으로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이 없도록 좀 더 세밀하게 민심을 헤아릴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이번 ‘군인 행진 보이콧’ 사태의 피해는 고스란히 광주전남 지역 내 부대들에 돌아갔다. 11공수여단은 현재 한반도 유사시 북한에 침투해 특수작전을 수행할 핵심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 1월 4차 핵실험 이후 계속된 북한의 도발로 어느 때보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부대다. 보훈처가 조금만 더 사려 깊게 이번 계획을 추진했더라면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손효주 정치부 hjson@donga.com
#광주#보훈처장#5·18#군인 행진 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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