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우]공정위 헛발질에… 남양유업 과징금 120억→5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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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경제부
박민우·경제부
남양유업 사태는 3년 전에 시작됐다.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물건을 강매한 녹취록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부터다. 검찰은 남양유업을 압수수색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진상 조사에 나섰다. 시민들의 불매운동도 잇따랐다.

당시 수사 결과 남양유업은 2007년 10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대리점에서 꺼리는 제품을 대리점에 강매한 게 드러났다. 대리점별로 판매 목표를 설정해 놓고 목표에 미달하면 본사 영업직원이 대리점 주문량을 마음대로 정하고 거기에 맞춰 공급하는 ‘밀어내기’ 영업도 했다. 공정위는 남양유업의 구입강제(밀어내기) 행위에 대해 단일 회사에 부과한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119억6400만 원을 물렸다.

하지만 최근 이 과징금이 2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공정위가 3일 내놓은 의결서에 따르면 공정위 제1소회의는 남양유업에 대한 과징금을 5억 원으로 확정했다. 역대 최대였던 제재 수준이 3년 만에 ‘쥐꼬리’로 바뀐 것이다.

과징금이 줄어든 과정을 보면 공정위의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다. 공정위는 2013년 첫 조사 당시 전방위 대리점 전수 조사를 통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피해 대리점주와 남양유업 측의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을 정리했다. 이처럼 안일한 사건 처리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증거 부족이라며 과징금 취소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는 그때서야 뒤늦게 남양유업 전국 1196개 대리점을 찾아다니며 주문 수량 등 부당행위를 증명할 컴퓨터 로그 기록을 뒤졌다. 하지만 성과는 초라했다. 남양유업이 2014년 전산 주문시스템을 업데이트하면서 이전 로그 기록을 삭제했고, 최초 주문 기록을 갖고 있던 대리점은 6곳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는 남양유업이 전산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빌미로 증거를 고의적으로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공정위는 농심, SK그룹 등 대기업을 상대로 수백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패소하는 일이 잦다. 모두 허술한 초기 대응이 불러온 문제는 아닌지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갑질’ 기업보다 을(乙)을 더 서럽게 만드는 건 무능한 ‘경제검찰’일지 모른다.

세종=박민우 경제부 minwoo@donga.com
#공정위#남양유업#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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