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배석준]신영철 前대법관의 ‘변호사 인생 2막’을 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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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준·사회부
배석준·사회부
영국 헨리 2세에게 살해된 토머스 베킷 성인(1118∼1170)의 무덤을 찾아가는 제프리 초서의 작품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법률가, 성직자 등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 등장하는 토머스 베킷은 대주교의 신분으로 왕권과 싸우다 사망한 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 사상 최초의 대법관이었다. 대법관 재직 때 판사가 지방에 직접 가서 재판하는 순회재판을 했다. 또 오늘날 영국 사법제도의 모델이 된 배심재판을 도입했다. 자신을 임명한 왕권에 충성하기보다 다수의 시민에게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소설 속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수임료를 많이 받으려 애쓰는 법조인과 달랐다.

대법관은 영국 소설에 나오는 6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간이 달라도 중요성은 차이가 없다. 사법부 최고위직을 지낸 신영철 전 대법관이 지난달 16일 변호사 개업 신고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내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신 전 대법관은 우리 사회가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만든 모든 법을 피해갔다. 그는 전직 고위 법관과 검사장 등에 대해 퇴임 후 3년 동안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관(官)피아 방지법’이 시행되기 약 한 달 반 전인 지난해 2월 퇴임했다. 2014년 12월 30일 개정된 ‘관피아 방지법’은 지난해 3월 31일 시행됐고 그 사이인 2월 17일 신 전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 1년 동안만 사건 수임을 제한한 옛 변호사법의 적용을 받은 그는 이를 피해 지난달 16일 변호사 개업 신청을 했다.

변호사단체가 대법관의 변호사 활동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관련 법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신 전 대법관은 1981년 변호사로 이미 등록한 상태여서, 다시 등록을 하라고 하는 것은 변호사단체가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전 대법관 측은 법무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과거 등록된 변호사 등록이 유효하고 다시 등록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도 받았다. 결국 법대로 한다면 신 전 대법관은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신 전 대법관의 변호사 활동이 위법하지 않다고 해서 모든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에 몸담고 있는 법관 상당수는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국민의 위임으로 빌려 입은 옷과 같은 것이고, 국민이 입혀준 법복을 사적인 이익에 사용하기보다 공익을 위해 애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인 법관들이 국민이 입혀준 법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배석준·사회부 eulius@donga.com
#신영철#대법관#변호사#관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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