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공화당에 고개 숙인 오바마, 국회만 성토한 朴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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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신년연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3일 각각 청와대와 미 의회의사당 연단에 섰다. 두 사람은 30분 간격을 두고 신년 국정연설을 했다. 대통령이 한 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자리라는 점은 같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의사당에 입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마치 떠들썩한 대형 공연장의 인기가수를 보는 듯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냈고, 오바마는 의원들과 하이파이브도 했다. 30분 전 청와대 춘추관에 들어선 박 대통령의 얼굴은 무거워 보였다. 국정의 피로감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국정 운영의 중압감이야 ‘세계의 대통령’인 오바마가 덜할 리 없겠지만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는 많이 달랐다. 오바마는 활기찬 목소리로 공화당 소속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게 감사 인사부터 했다.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혹평한 야당의 수장(首長)의 꼴도 보기 싫었겠지만 지난해 예산안 통과에 협조한 데 대해 고개부터 숙였다. 박 대통령은 “임시국회에선 선거구도 획정 짓지 못했고 핵심 법안들도 한 건도 처리되지 못했다”며 국회에 책임부터 물었다.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하는 방식은 약간 달랐다. 오바마는 ‘이슬람국가(IS)’ 격퇴에 필요한 무력사용권을 공화당이 승인해주지 않는 데 대해 “IS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싶으면 군에 이기라는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점잖게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 법안 5개 중 하나는 뺄 테니 4개라도 통과시켜 달라”며 배포된 연설문에 없는 ‘정말’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절박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바마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바마가 “더 나은 삶이라는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개혁”이라고 말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반면 박 대통령은 “국회는 개인의 정치를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정치권을 대놓고 탓했다.

마무리도 달랐다. 오바마는 “국민 여러분을 믿는다. 미국은 강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냈지만 박 대통령은 “욕을 먹어도, 잠을 못 자도, 어떤 비난과 성토도 받아들이겠다”며 대결적인 뉘앙스였다.

한국과 미국은 정치문화가 다르고 서로 처한 상황이 같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답답하더라도 국민은 대통령에게서 희망을 읽고 싶어 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세련된 말이 듣기에도 좋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와 박 대통령은 참 많이 달랐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오바마#박근혜#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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