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월 만의 무역적자[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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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개월 만에 4월 무역수지가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은 29일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무역수지 100개월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 달성이 불과 한 달을 남기고 무산될 것이란 소식이다. 3월 무역수지 확정치는 다음 달 1일 발표된다.

▷상품 수출액과 수입액을 비교한 무역수지의 적자는 코로나19 탓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교역국의 국경이 막히면서 수출이 크게 감소한 반면 수입은 그만큼 줄지 않았다. 4월 1∼20일 무역수지가 34억5500만 달러(약 4조2000억 원) 적자여서 남은 기간 만회하기가 어렵다. 수출, 수입을 합한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가 한국은 68.8%로 미국(20.4%)의 3.4배, 일본(28.1%)의 2.4배다. 그만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무역 축소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월 기준 마지막 무역 적자를 냈던 2012년 1월은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던 때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지나치게 돈을 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몇 년이 지나 재정적자로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휴대전화, 선박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6.6% 감소한 데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수입액이 크게 늘어 19억60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냈다.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은 2012년 3월 15일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돼 이명박 대통령 때 발효된 한미 FTA를 계기로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이후 8년 넘게 월간 무역수지 흑자 릴레이를 이어왔다. 광복 이후 한국이 연간 무역수지 흑자를 낸 것은 1986년이 처음이었다. 이후 4년간 흑자를 내다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그러다 1998년 원-달러 환율 상승 덕분에 높아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이 급증해 흑자로 전환했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내면 국내 외환이 줄어들고 국가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무역적자는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정부가 설명하지만 국제질서는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불리한 반(反)세계화와 보호무역 강화 쪽으로 급격히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수출이 1분기에 선방했지만 코로나 영향이 본격화된 2분기에는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하다. 8년 전 한미 FTA처럼 앞뒤가 꽉 막힌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반전 카드가 필요한 때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무역적자#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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