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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WHO 신뢰도[횡설수설/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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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WHO 신뢰도[횡설수설/이태훈]

이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0-03-12 03:00수정 2020-03-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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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00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 수장에 올랐다. 젊은 의사 시절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한센병 환자를 치료해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린 이 총장은 WHO 사무총장을 맡아서도 저개발 국가의 전염병 퇴치에 헌신했다. 새로운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각국이 WHO에 즉각 보고하도록 국제보건규칙을 바꾼 것도 그의 업적이다.

▷한 해 150일 동안 출장을 다니면서도 “가난한 회원국들의 분담금으로 호강할 수 없다”며 비행기 일반석만 고집하고, WHO 예산을 아끼려고 제네바의 소형임대주택에 살며 관용차도 마다한 이 총장은 61세 때인 2006년 뇌출혈로 쓰러져 5년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를 하다 이 총장을 만나 수녀가 되려던 뜻을 접고 결혼한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는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페루 빈민가에서 여성의 자립을 돕는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WHO 사무총장은 지구촌 77억 명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자리다. ‘세계의 보건대통령’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온 것도 이런 막중한 책임 때문일 것이다. 이 총장의 후임이자 직전 사무총장인 홍콩 출신의 마거릿 챈은 10년간 재직하며 신종인플루엔자, 지카바이러스 등과 싸워 이겨냈다.


▷2017년 취임한 거브러여수스 현 사무총장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에티오피아 보건장관 출신인 그는 2017년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중국이 WHO에 600억 위안(약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결정적 힘이 됐다. 환자가 급증하던 1월 말 시진핑 주석을 만나 “중국 정부가 보여준 확고한 해결 의지가 감탄스럽다”며 노골적으로 두둔했다. 지난달 뒤늦게 중국 우한을 현지 조사한 WHO 조사단의 브리핑에서는 “세계가 중국에 빚을 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세계는 지금 우한발 바이러스가 113개국으로 퍼져 ‘팬데믹(대유행)’ 진입 초읽기에 들어갔는데 WHO와 중국은 짝짜꿍하는 데 정신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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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는 1948년 설립 이후 질병 퇴치에 큰 기여를 해왔다. 한 해 250만 명이 사망할 정도로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를 1980년 완전 퇴치한 것도 WHO의 공로였다.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WHO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걱정스럽다. ‘병은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지금 WHO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who#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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