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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횡설수설/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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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횡설수설/서영아]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19-12-02 03:00수정 2019-12-0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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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cm의 큰 키에 반듯한 자세.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정치인. 1947년 고향 군마에서 처음 당선된 그를 정가에서는 ‘청년장교’라고 불렀다. 29일 향년 101세로 세상을 떠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 얘기다.

▷그는 1982년 11월 총리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후(戰後) 정치의 총결산”을 내걸고 뛰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한국은 전두환,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정권으로 보수 지도자들의 시대. 우선 이듬해 1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1982년 터진 교과서 문제에 안보 경협을 둘러싼 망언 파동 등으로 양국 관계가 흔들리던 상황. “오른손엔 미국, 왼손엔 한국의 손을 쥐고 세 나라가 태평양 국가로 돌진하자는 것이 나의 외교 전략이었다”고 훗날 소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공식 만찬 연설의 3분의 1을 한국어로 했고 ‘2차’에서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한국어로 불렀다. 전 대통령도 일본 노래를 답례로 불렀다. 방한 직후엔 미국으로 날아갔다. “미일이 가치관을 일체화해 방위에 나선다”는 미일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두 정상이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개인적인 친밀관계’(이른바 론-야스 관계)를 쌓는 데 성공했다.


▷1947년 정치에 입문해 56년간 국회의원, 이 중 5년간은 총리로 재직했다. 젊은 시절 도쿄 도심의 의원 숙사로 이사한 뒤 한 정치부 기자에게 이런 자랑을 했다. “월세가 공짜인데 방 두 개에 부엌까지 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이 숙사는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는 “냉난방 시설이 없고 바퀴벌레가 튀어나오는 좁은 아파트”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어 기러기 생활을 해야 했다”는 등의 회고담이 나오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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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총리로는 처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대표적인 개헌론자이지만 ‘보수 원류’답게 주변국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13년 아베 신조 총리가 역사 수정주의 논란을 일으키자 언론 기고를 통해 “주변국의 신뢰를 얻으려면 역사의 부정적인 부분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과거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함께 행동은 엄격히 삼가야 한다”며 “민족이 입은 상처는 3세대,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2006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일관계에 대해 “외교의 중심점은 양국 수뇌가 정말로 우정을 느끼고 굳게 악수하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상대 입장을 존중하고 이쪽 입장도 존중받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인 것 같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야스히로#한일관계#일본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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