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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슈리성[횡설수설/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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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슈리성[횡설수설/서영아]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19-11-04 03:00수정 2019-1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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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세계문화유산 슈리(首里)성이 원인 모를 화재로 불타올랐다. 건물 대부분과 유물 수백 점이 사실상 전소됐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슈리성은 수백 년간 이곳을 지배하던 류큐(琉球)왕국의 심장부와도 같은 곳이다.

▷오키나와는 지금은 일본의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중 하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독자적인 국체를 가진 류큐왕국이었다. 조선과도 교류가 많아 조선왕조실록 태조 1년(1392년)에 “유구국 중산왕이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을 비롯해 많은 실록에 조공과 사신이 오간 기록이 있다. 신숙주는 ‘해동제국기’에 류큐국기를 남겼다. 류큐왕국은 1609년 일본의 침략 뒤에도 중국 일본 양쪽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를 유지했지만 메이지 유신 뒤인 1879년 일본 정부에 의해 왕조가 폐지되면서 오키나와현이 됐다.

▷일본 정부는 복속 뒤에도 오키나와를 차별했던 것 같다. 1945년 4월부터 미군의 본토 진격을 막기 위해 시작된 혈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민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일본군은 주민들을 방패막이 삼았고 앳된 소년 소녀들도 군대와 간호대 등으로 동원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주민들에게 ‘옥쇄’를 명령해 자살을 강요했다. 이 전쟁으로 민간인만 12만여 명, 섬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됐다. 당시 육군 총사령부가 지하벙커를 설치한 곳이 슈리성이었다. 격렬한 전투에 건물이 부서졌고 사령부가 퇴각을 결정하자 부상을 입어 따라나설 수 없던 약 5000명이 이 벙커에서 집단 자결하는 참극도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오키나와는 미군정 치하에 들어갔다가 1972년에야 일본에 반환됐다. 지금도 주일미군의 70% 이상이 이곳에 주둔한다. 동아시아 전략에서 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미군이 많다 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주민 반발도 크다. 오늘날 오키나와는 일본 집권세력에 대해 가장 ‘야당성’을 갖고 싸우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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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화재에 대해 잠시 “한국인, 중국인의 방화”에 의한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고 한다. 재난이 닥치면 공통의 적을 찾으려는 뒤틀린 집단심리다. 그러나 이성의 힘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4월 노트르담 대성당, 지난해 브라질 박물관 등 인류의 노력과 지혜가 축적된 문화유산들이 순식간에 화마에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성을 복원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단다. 오키나와의 대표적 관광명소이기도 했던 슈리성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빈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슈리성#오키나와#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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