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제학자[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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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과에는 38명의 남성 교수가 있을 뿐 여성 교수는 없다. 지난해 정은이 미국 일리노이대 조교수의 채용이 확정됐지만 개인 사정으로 포기하면서 서울대 경제학과 사상 첫 여교수가 무산됐다. 서울대 경제학과가 유난한 경우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경제학에서 여교수의 낮은 비율은 논란이다. 2015년 하버드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남성 경제학자가 정교수가 될 확률은 8%인 데 반해 여성 경제학자가 정교수가 될 확률은 2%에 불과하다.

▷애덤 스미스에서 근대 경제학이 태동했다. 리카도 맬서스 피구 세 마르크스 케인스까지 교과서에서 다루는 경제학자는 다 남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9년부터 시작된 노벨 경제학상의 지난해까지 수상자 81명을 봐도 폴 새뮤얼슨, 밀턴 프리드먼, 게리 베커, 로버트 루커스, 폴 크루그먼 등 80명이 남성이었다. 유일한 예외가 2009년 공동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당시 인디애나대 교수였다. 그리고 올해 에스테르 뒤플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두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경제(economy)는 그리스어로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관리를 뜻하는 노미아(nomia)가 합쳐진 말이다. 그렇다면 살림하는 주부가 경제학을 가장 잘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여성이 경제학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19세기 말까지 여성은 기껏해야 상품의 소비를 관리하는 주체였지, 상품의 생산을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었다. 여성이 취업하기 시작하고 참정권을 갖게 되면서 뒤늦게 여성에게 국가적 규모에서 경제를 생각해볼 여건이 주어졌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5년 경제학의 세계를 변화시킨 13명의 여성을 꼽은 적이 있는데 이 중에는 ‘자본축적론’을 쓴 로자 룩셈부르크도 있고 포스트케인스주의의 선두주자인 조앤 로빈슨도 있다. 이들은 저명하지만 비주류라서 평가받지 못했다고 치자. 1960년대 프리드먼과 함께 ‘통화주의’를 연구했고 노벨상 공동수상자가 됐어도 충분한 애나 슈워츠라든가 1920년대 이미 시카고대 사회복지행정스쿨의 학장을 지낸 이디스 애벗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스트롬은 첫 여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긴 하지만 수상 분야가 정치 제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순수한 경제학 분야라고 보기 어렵다. 뒤플로는 MIT에서 자신의 박사학위를 지도한 스승이자 나중에 남편이 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 등과 함께 수상했다. 순수한 경제학 분야에서 단독으로 수상하는 여성 경제학자도 조만간 나오리라 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대 경제학과#여성 교수#여성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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