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국가’[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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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004년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심사 간소화 대상국인 ‘백색국가’에 포함시켰다. 이는 당시 한국이 대량살상무기(WMD)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엄격한 정부 허가를 받게 하는 ‘캐치올(catch-all)’ 제도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최고 수준의 전략물자 통제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어져 온 한일 간 우호 분위기도 작용했다. 그런데 사실상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일본은 한국이 백색국가 대상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2004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 체제는 자유무역을 추구하면서도 공산권 국가에 대해서는 핵과 미사일, 생화학 무기, 재래식 무기 등의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1970년대 말부터 핵공급국 그룹(원자력), 호주 그룹(생화학 무기), 미사일 기술통제 체제(미사일), 바세나르 체제(재래식 무기) 등 4대 체제가 만들어졌고 모두 29개국이 가입했다. 이들 국가는 제3국과의 교역에서 관련 물자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서로 간에는 수출 허가를 간소화해 줬다. 각각 명칭은 다르지만 다들 일본의 백색국가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서로 믿는 ‘안보 회원국’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도 ‘대외교역법’상 ‘가’ 지역 수출 대상국 제도를 운용하는데 현재 1400여 개 품목에 걸쳐 28개국이 ‘가’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일본은 ‘외국환 및 외국거래법’상 27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분류하고 1120여 개 전략물자에 대해서는 수출 허가를 간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다. 세계 4대 체제에 가입한 29개 국가 가운데 지금까지 백색국가에 포함시킨 나라를 나중에 제외시킨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백색국가 제외는 안보상 서로 불신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2001년 일본을 ‘가’ 지역 수출국에 포함시킨 뒤 역사 및 영토 갈등이 있었지만 제외한다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

▷한국은 전략물자 수출 통제나 ‘캐치올’ 운영에서 품목을 세분화하고 수출업자가 스스로 인지하거나 의심이 가는 비전략물자 수출도 제한하는 등 일본보다 엄격하다. 남북한 대치 및 북핵 위협 아래에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로 지정할 때에 비해 조금도 보안·관리가 약화된 게 없는데도 백색국가 배제를 강행한다면 역사 갈등을 국제 전략물자 관리 체제 흔들기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백색국가 제외#강제징용 판결#화이트리스트#한국 수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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