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올 규제[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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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ICJ)로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 헤이그 외곽의 바세나르는 인구 2만여 명의 소도시지만 국제평화 유지에 한몫을 한다. 냉전이 끝나 서방의 공산권 전략물자 수출 통제기구인 코콤(COCOM)이 해체되자 1996년 7월 이곳에 본부를 둔 ‘바세나르체제’가 출범했다. ‘국제 평화와 지역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모든 국가’에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여기에 가입한 한국, 일본 등 42개 국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뜻과 행동을 같이하는 상호 우호국이다.

▷바세나르체제에 근거를 둔 조치 중 대표적인 게 ‘캐치올(catch all) 규제’다.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출 전체를 전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다. 지금까지 북한,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이 유엔이나 서방 국가들의 캐치올 규제 대상국이었다. 일본은 2017년 6월 자국을 경유해 북한에 드나드는 제3국 화물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압수 조사하는 캐치올 규제를 도입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 결의안 2270호에서 북한에 캐치올 규제 적용을 요청한 것에 호응한 것이다.

▷일본이 빠르면 다음 달부터 한국에 대해 캐치올 규제를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발동해온 캐치올 규제를 무역 보복에 사용하려는 것이다. 깡패 막자고 같이 밤거리 순찰에 나섰던 동료에게 야경봉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이 캐치올 규제를 시행하면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규제 대상이 된다. 원자력, 화학무기, 미사일 부품 등 무기 관련은 물론이고 티타늄합금 같은 특수강, 주파수 변환기, 대형 발전기, 방사선 측정기 등 무수히 많다. 규제 대상이 되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이 될 것이다.

▷바세나르체제는 “특정 국가나 특정 국가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선량한 의도의 민간 거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적용에 최대한 신중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처럼 한국을 콕 집어 휘두르거나 무역전쟁에 써서는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이 캐치올 규제에 손을 대면 바세나르체제 가입국으로서 규정 위반이다. 더욱이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에 나서자 맹렬히 비난했던 일본이 캐치올 규제를 들먹이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캐치올 규제#대한 수출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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