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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아줌마’의 추억[횡설수설/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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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아줌마’의 추억[횡설수설/서영아]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19-06-28 03:00수정 2019-06-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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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영국 BBC 아시아판은 방문판매 중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가 유제품을 건네주고 잠시 말벗도 해드리는 16년 차 야쿠르트 아줌마 한영희 씨의 활동을 소개했다. 방송에서 81세 차미자 할머니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는데, 이분이 오면 말동무도 해주고…”라며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홀몸노인 돌봄 활동은 1994년 서울 광진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국 617개 지자체와 연계해 3만여 명을 돌보는 규모로 커졌다. 주 5회, 노인들의 안부를 살피고 뭔가 걱정스러우면 행정기관에 연락해 고독사 예방에도 힘을 보탠다. 홀로 쓰러져 있던 홀몸노인의 생명을 구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노란 옷에 챙 모자, 가방을 메고 이 집 저 집을 오가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대한민국 주부 일자리의 원조였다. 1971년 47명으로 시작해 1998년엔 1만 명으로 불어났다. 지금도 1만1000여 명이 일한다. 개인사업자 형태지만 수입이 안정적이고 근무시간이 짧아 예나 지금이나 주부들에게 인기다. 그동안 가방은 카트로, 다시 냉장설비가 갖춰진 전동카트로 진화했다. 아줌마들의 역할도 시대 변천에 따라 달라졌다. 바야흐로 고령사회, 홀몸노인의 안부를 살피고 돕는 일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정보통’ 노릇을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이 든든한 조직을 만들고 키워온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2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90세를 넘기고도 매일 출근했다고 하니 1969년 창업 이래 만 50년간 현역으로 뛴 셈이다. 요즘이야 유산균 식품을 건강과 장수를 부르는 슈퍼 푸드라고 알아주지만, 창업 당시만 해도 “균을 돈 주고 사서 먹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불모지였다. 창업이념 자체가 ‘건강사회 건설’이었던 만큼, 고인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평생 힘을 쏟았다. 1975년부터 사내에 불우이웃돕기 조직을 만들었고,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전국어린이건강글짓기대회 등을 뚝심 있게 지원했다.

▷첨단 정보기술(IT) 자동화 시대에 사람이 유제품 한 병 한 병을 집집이 배달하는 조직이 건재하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 따스함을 확인하고 정을 나누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아닐까. 한국야쿠르트는 3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야쿠르트 아줌마’란 호칭을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로 바꾸었다. 현장, 특히 노인들 사이에선 여전히 ‘야쿠르트 아줌마’가 우세하겠지만, 이 호칭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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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야쿠르트 아줌마#한국야쿠르트#프레시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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