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구]‘구글 베이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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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주네팔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안전여행·생활정보’ 코너에 이례적인 공지가 떴다. 인도에서 대리모 출산이 불법화되면서 일부 한국인이 인도에서 대리모를 구해 배아를 착상시킨 뒤 네팔에서 출산해 네팔 당국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사관 측은 네팔은 대리모 출산을 인신매매와 같은 수위로 처벌하고, 아이는 바로 보육원으로 보낸다고 경고했다. 지난 14년간 이 코너에 오른 공지는 100건에 불과하고, 대부분 지진 고산병주의 등 여행 관련이어서 ‘대리모 주의’ 공지는 더욱 ‘쇼킹’했다.

▷대리모 출산 문제가 국내에서도 불거졌다. 10여 년 전 한 재력가 부부의 아이를 낳은 대리모 A 씨가 출산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하다 공갈,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대학생 시절 대리모 알선 인터넷 카페를 통해 부부를 만난 A 씨는 8000만 원을 받고 출산했지만 이후 돈이 필요할 때마다 협박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대리모 출산은 불법이다. 하지만 A 씨처럼 체외 수정된 부부의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낳은 경우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어 브로커만 처벌받았다.

▷독일 스페인 등은 대리모가 불법이지만 영국은 비상업적으로 허용하고,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동성 결혼을 한 엘턴 존은 대리모를 통해 아들 둘을 얻었다. 영국의 캐럴 홀록이란 여성은 불임 부부들을 돕고 싶다며 대리모로 13명을 낳았다. 대리모가 허용돼도 최소 10만 달러(약 1억2000만 원)에 달하는 출산비용이 부담인 선진국 부부 중에는 아프리카나 동유럽, 동남아시아 여성을 통해 낳기도 하는데 이를 ‘구글 베이비’라고 부른다. 구글이 본사만 미국에 두고 일은 하청으로 개도국에서 하듯, 아기도 이런 식으로 낳는 것을 빗댄 것이다. 201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동명의 고발 영화가 출품됐을 정도니 전 세계적으로 이미 심심찮게 벌어지는 현상인 듯하다.

▷인간의 욕망과 급격히 발달하는 기술을 윤리와 제도가 발맞춰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14년 태국 여성을 통해 쌍둥이를 낳은 호주인 부부는 한 아이가 다운증후군에 걸리자 정상 아이만 데리고 출국해 전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한 미국-이탈리아 레즈비언 부부는 기증받은 정자로 올 초 해외에서 각각 아이를 한 명씩 낳았는데 미국 정부가 미국 여성이 낳은 아이에게만 시민권을 줘 현재 소송 중이다. 불임이 많아지는 데다 동성 결혼까지 늘면 대리모 출산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아기의 몸은 가볍지만 생명은 절대 가볍지 않다. 너무도 무거운 문제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대리모 출산#기술 윤리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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