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구]에베레스트 교통체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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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베레스트 정상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좌우 수천 m가 넘는 낭떠러지 외길을 등반객 수백 명이 빽빽이 줄을 지어 오르는 모습에 “합성사진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사진은 네팔 산악인 니르말 푸르자가 네팔 쪽 코스에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등반객의 모습을 찍은 진짜였다. 전문 산악인들도 평생의 숙원으로 여겼던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제는 해마다, 특히 5월이면 일명 ‘데스 존(death zone)’이라 부르는 정상 부근 병목 지점에서 ‘교통체증’을 앓을 정도의 대중적 코스가 됐다.

▷1977년 9월 15일 산악인 고상돈이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고 한 무선 메시지에 온 국민이 환호했던 감동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상업 등반업체들이 일반인도 돈만 내면 ‘어떻게 해서든지’ 정상에 오르게 해준다고 한다. 업체와 고용한 셰르파 수에 따라 다르지만 약 3만5000∼5만 달러를 내면 산소통 식량 등 짐을 다 날라주고, 크레바스에 사다리까지 놔주기 때문에 등반객은 배낭만 메면 된다. 정상까지 이르는 300여 m 외길에는 아예 로프가 설치돼 잡고 오를 수도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날씨가 좋은 날이 매우 적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에 따르면 과거에는 정상의 기상 예측을 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등반 실패가 많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도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산 곳곳은 물론이고 정상에도 와이파이 공유기가 설치돼 있어 좋은 날씨가 예측되면 다같이 등반에 나선다는 것이다.

▷올해 에베레스트에서는 10명이 강풍이나 추위, 추락 등이 아닌 이 교통체증으로 사망했다. 병목 지점은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폭밖에 안 돼 중간에 누군가 쓰러지거나 주저앉기라도 하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보통 6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게 산소통 2개를 준비하는데, 병목 지점에서 오래 기다리다 보면 고산병과 함께 산소 결핍으로 인한 호흡 곤란을 겪는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 등반을 하려면 최소한 하프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한겨울에 최소 24시간 이상 산행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필요하다. 네팔 정부도 초보자 고령자 장애인 등에 대한 등반 제한을 검토했지만 관광수입 감소 우려로 흐지부지됐다. 마라톤도 출전 자격과 인원수를 제한하는데 해발 8000m급 고지를 오르는 데 아무 제한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말 교통경찰이라도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에베레스트#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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