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광현]장·단기 금리역전 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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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두 명이 와서 10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같은 이자’로 A는 1년 뒤, B는 10년 뒤에 돌려주겠다면 누구에게 빌려주겠는가? 당연히 A에게 빌려줄 것이다. 돈 빌려주는 기간이 길면 내 돈이 그만큼 오래 묶이고, 돈을 떼일 가능성도 높아지며, 물가가 올라 돈 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장기 B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기 A보다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대개는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높다. 그런데 가끔은 장기 금리가 더 낮은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22일 미국 채권시장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와 3개월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459%에 거래를 마쳤는데, 장중 한때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가 2.42% 선까지 내려가면서 역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곧바로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쳐 대표적인 주가지수 중 하나인 다우존스30 평균지수가 460.19포인트(1.77%) 급락했다.

▷장·단기 금리역전을 경기 하강의 서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이어진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 불황 국면에 들어설 때마다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지난주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3%에서 2.1%로 낮추었다. 유럽, 중국 경제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강세를 보였던 일본마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이달에 정부가 부정적 경기 판단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몇 차례 장·단기 금리역전이 일어났고 2012년에는 보름 이상 지속됐으나 그 이후는 보기 드물었다. 요즘 국채 10년 만기물이 1.9∼2.0%, 3년 만기물이 1.8% 안팎으로 장·단기 역전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다만 기준금리를 포함해 장·단기 금리 모두 미국 금리보다 낮은 ‘한미 금리역전’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더욱 분발해야 할 쪽은 우리인 것 같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장·단기 금리역전#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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