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투잡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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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인이 많아졌다. 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이 지난해 8월 시작한 ‘쿠팡 플렉스’는 자기 차를 이용해 심야 배송을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모집 70여 일 만에 지원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부업으로 PC방을 하려는 직장인을 겨냥해 낮에는 본사에서 원격관리해 주고 밤에는 퇴근한 주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회사까지 등장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해 ‘시간관련 추가 취업가능자’는 62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시간관련 추가 취업가능자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원하는 ‘투잡 희망자’다. 지난해 한 아르바이트 포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중소기업 직장인의 41.2%가 투잡을 뛰고 있다고 답했다. 2016년 조사 때(19.9%)보다 크게 늘었다.

▷일본도 투잡을 뛰는 사람이 최근 3년간 210만 명이나 늘어 지난해 말 7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한국과는 딴판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 경제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일본에선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일할 사람을 못 찾는다. 그러니 투잡족이 늘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직장인의 투잡을 막았던 ‘표준취업규칙’을 바꿨고 공무원의 투잡을 인정한 지방자치단체도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야근, 잔업 등 특근 수당이 많았던 일부 정규직 근로자들까지 소득이 줄자 생계형 투잡에 내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줄어든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또 다른 일자리에서 밤을 보내는 근로자들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이 포함되면서 아르바이트생도 투잡, 스리잡을 뛰어야 할 형편이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 업주들이 여러 명을 짧은 시간 고용하는 ‘쪼개기 알바’를 쓰고 있는 탓이다. ‘주경야독’ 대신 직장인의 밤을 빼앗은 투잡 시대가 안쓰럽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투잡#아르바이트#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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