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문 열렸다” 알려만 줬어도 무사했을 소중한 생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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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지하배수터널에서 터널 안으로 쏟아진 빗물에 휩쓸려 근로자 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하도급 업체는 비 예보가 있었는데도 작업을 강행했고, 시공사는 구청으로부터 터널 수문이 열려 빗물이 유입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도 작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작업자들과 무전 연락이 안 돼 대피하라고 직접 알리러 내려간 사람마저 변을 당했다. 인재도 이런 인재가 없다.

장마에 상수도관 공사를 강행하다 쏟아진 강물에 7명이 숨진 2013년 서울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서울시는 팔당댐 방류량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시공사에 알리지 않았고, 시공사는 폭우 예보에도 공사를 강행했다.

서울시는 이후 2016년 ‘건설업 혁신 3불(不) 대책’을 발표하고, 사망 등 중대재해를 유발한 업체는 5년간 시 발주공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하도급 업체는 2017년 경남 창원에서 사망사고를 냈음에도 공사를 땄다. 서울시가 서울에서 발생한 사고로만 좁혀 적용했기 때문이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실상은 이런데 서울시는 1년 후 3불 대책 성과보고회까지 열었다.

이번 참사는 지상과 무전연락이 됐거나 튜브만 있었어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공사 안전매뉴얼은 터널 내에 무선 통신 중계기를 두도록 했지만 사고 당일에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는 이유로 치워졌다고 한다. 작업자들은 무용지물인 무전기를 지상과의 끈으로 믿고 내려간 셈이다.

최근 들어 장마철 폭우로 곳곳에서 담장이 무너지고 포트홀(도로 파임)이 생기고 있다. 노후 건물 철거 현장 주변을 지나려면 합판이나 천으로 위를 가린 비계 통로 밑을 지나가야 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사고는 ‘설마’에서 비롯된 ‘규정 위반’에서 시작된다. 말과 서류상이 아닌 실질적이고 지켜지는 안전대책이 돼야 한다.
#지하배수터널#하도급 업체#장마#폭우#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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