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대기환경 규제 성공과 실패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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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대기 정체와 국외 오염물질의 영향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높아지면 무수한 대책 및 규제 방안이 쏟아지다가 공기가 맑아지면 금방 다른 이슈에 몰입하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수많은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부분은 파란 하늘이 지속되면 슬며시 환경 규제 철폐가 공격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온다는 점이다.

개인의 자유가 국가의 가장 큰 정체성인 미국에서는 규제에 대한 정서적인 반감이 우리보다 훨씬 높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대기청정법(Clean Air Act) 공식 홈페이지에는 1963년 제정된 법에 의해 얼마나 공기가 깨끗해졌고 얼마만큼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통계가 실려 있다.

이 통계에 의하면 1970년부터 2011년 사이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는 68%가 떨어졌고, 국내총생산(GDP)은 212% 증가했다. 규제가 경제에 영향을 적게 주었다는 수동적인 해석을 넘어, 신기술 개발 및 생산, 적용 과정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됐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공론임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규제 발효 시점에서 단기간의 환경 규제로 일시적 고용 불안이 있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소득 일자리 창출 등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렇게 성공적인 규제 정책의 이면에는 이 법안의 근본정신인 ‘유연성’과 ‘책임’의 적절한 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 미 의회는 석탄발전소 등 공업 시설의 이산화황 배출을 줄이기 위해 총량규제 및 시장 거래제를 도입한다.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석탄을 이용한 전력 생산에 있어 개별 배출원의 배출량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 도입은 지양한다. 그 대신 선진적인 방진 기술을 도입해 목표량을 초과 달성한 시설에 대해서는 잉여분을 여러 이유로 방진 기술을 도입하지 못한 시설에 팔게 함으로써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으로 정책을 집행했다. 이러한 유연한 정책 집행은 전력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규제의 목적을 책임감 있게 달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뿌리 깊게 정착돼 있는 미국에서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규제 정책이 더디게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특히 확실한 과학적인 증거 없이는 섣불리 정책으로 이행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대기청정법은 대기환경 문제에 대한 연구 조사, 그리고 교육에 대한 장려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생산이 금지된 프레온은 1920년대 발명과 함께 냉장고 및 에어컨의 냉매로 이용돼 왔다. 1974년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에 의해 프레온이 성층권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는 연구가 발표된 이후 12년 동안 미 정부는 꾸준히 이에 대한 연구를 후원했다. 1985년 영국의 남극 기지에서 오존 구멍이 발견된 이후 미국항공우주국이 주관이 된 국제 연구팀의 현장 관측 결과가 프레온에 의한 성층권 오존 파괴를 정론으로 확립했다. 이후 유엔이 주관이 돼 1989년 몬트리올의정서를 발효하고 미국은 의정서 발효 다음 날 프레온 사용 금지를 법제화한다. 13년간의 과학적인 증거 수집은 민간과 정부가 같은 목표로 사회적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너지를 증폭시키는 바탕이 됐고, 공학계에는 프레온의 대체 물질을 개발할 충분한 시간을 줘 성공적인 목적 달성을 도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는 ‘아름다운 것은 더러운 것, 더러운 것은 아름다운 것,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으로 날아가자’라는 세 마녀의 대사가 있다. 이처럼 13세기 초반부터 영국에서는 석탄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 문제가 부각됐다. 이에 따라 국왕 에드워드 1세는 1306년 당시 건축의 주재료로 쓰였던 생석회 생산 공정에 석탄 이용을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던 이 규제는 유야무야 지켜지지 않다가 1329년 철폐된다.

결국 문제의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유연하지만 확실한 책임을 부여하는 규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 제시로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무리가 적게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조화될 때 규제를 통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한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미세먼지#대기환경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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