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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장애는 불편할뿐”… 7대륙 최고봉 오른 ‘희망과 도전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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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장애는 불편할뿐”… 7대륙 최고봉 오른 ‘희망과 도전의 아이콘’

정승호기자 입력 2016-01-04 03:00수정 2016-0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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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장애인 산악인 김홍빈씨
김홍빈 씨가 그동안 자신이 오른 히말라야 고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산에서 손가락을 잃었지만 한순간도 산을 원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박영철 기자 shjung@donga.com
“이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가운데 5개 남았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광주 광산구 흑석동 등산용품점에서 만난 산악인 김홍빈 씨(52·트랙스타 홍보이사)는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6개월 뒤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5m) 원정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얼굴이 한껏 상기돼 있었다.

“낭가파르바트는 1990년 도전했다가 악천후로 오르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해서 꼭 정상을 밟고 싶어요. 다음은 가셰르브룸Ⅰ(8068m), 그 다음은 브로드피크(8047m)입니다.”

김 씨는 열 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인(2급)이다. 산악인에게 손가락이 없다는 건 더는 등반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그는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8000m급 고봉을 거침없이 입에 올렸다. 그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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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도전의 아이콘

김 씨는 등반 중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지만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곳을 모두 오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그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그래서일까. ‘희망과 도전의 아이콘’이란 닉네임이 그에게 잘 어울렸다.

전남 고흥군 동강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하루에 산봉우리 4개를 넘으며 학교를 다녔다. 등하교에만 3시간 넘게 걸렸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고 한다. 김 씨는 “아마 그때부터 산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웃었다. 김 씨가 정식으로 산악계에 입문한 것은 1983년 광주 송원대 산악부에 들면서부터. 암벽과 빙벽을 오르며 산을 알게 됐고 산에서 만난 선후배들이 좋았다.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에 참여하면서 설산(雪山)의 매력에 빠졌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1991년 큰 시련이 닥쳤다. 시샤팡마(8027m) 초오유(8201m) 원정을 앞두고 경험을 쌓기 위해 홀로 북미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m)에 도전하던 길이었다. 단팥죽과 비스킷 외에 식량을 거의 가져가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등반을 계속하다 탈진과 피로 고소증으로 텐트 안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조난된 지 16시간 만에 다른 산악인들에게 구조돼 목숨은 건졌지만 양손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손가락은 숯검정처럼 검게 변해갔다. 결국 양쪽 손목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였다.

○장애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김 씨는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장애가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손가락이 없으니 혼자 양말도 신지 못했어요. 남이 문을 열어줘야 밖에 나갈 수 있어 며칠씩 집에만 머물기도 했죠. 나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어요.”

그러나 그에게는 산이 있었다. 선후배 산악인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해 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등반이었다. 그가 첫 번째 목표로 세운 것은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이었다. 비록 남들보다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997년 옐브루스(5642m·유럽)와 킬리만자로(5895m·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아시아), 아콩카과(6959m·남미), 매킨리(북미), 칼스텐츠(4884m·오세아니아), 빈슨매시프(4897m·남극) 등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이는 전문 산악인에게도 쉽지 않은 기록이다. 하물며 양손이 없는 장애인이 세계 최초로 이런 기록을 세웠으니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면서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원정 경비를 마련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빈슨매시프를 갈 때는 8000m급 2, 3개 봉을 오를 수 있는 예산이 필요했다. 대륙마다 산의 지형과 환경도 달라 함께 간 대원들을 힘들게 했다.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마음속의 큰 짐을 벗은 것 같아 홀가분했어요. 장애는 그저 불편할 뿐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서 뿌듯하기도 했고요.”

○ 히말라야에서 다시 꾸는 꿈

쉴 만도 했지만 그는 다시 히말라야로 발길을 돌렸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히말라야가 끌어당겼다고 한다.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8000m급 14좌에 오르겠다는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몇몇 고봉은 쉽게 품을 내주지 않았다. 2006년 가셰르브룸Ⅱ(8035m), 시샤팡마 등정에 이어 이듬해부터 마칼루(8463m), 다올라기리(8167m) 정상에 올랐지만 2009년 안나푸르나(8091m)의 벽을 넘지 못했다. 2년 후 초오유에 오른 뒤 2014년까지 K2(8611m), 칸첸중가(8586m), 마나슬루(8163m)를 잇따라 등정했지만 지난해 로체(8516m)와 브로드피크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내려와야 했다.

죽을 고비도 서너 번이나 넘겼다. 지난해 4월 로체 원정 때 540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는데 네팔 지진으로 눈사태가 나면서 불과 300여 m 떨어진 곳에 있던 산악인 18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2009년 다올리기리 정상에 오른 뒤 로프에 의지해 경사도 60∼70도의 빙벽을 내려오던 중 로프가 끊겨 하마터면 추락사할 뻔한 일도 있었다.

최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고 순간 초속 20∼30m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8000m 고봉을 손가락을 쓰지 않고 오르는 데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장갑을 끼고 벗는 것, 텐트를 치는 것, 사진을 찍는 것까지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신세지는 것이 미안해 지퍼를 올려달라는 말도 못하고 옷에다 소변을 본 적도 있었어요.”

8000m급 고봉 가운데 김 씨가 가장 힘들게 오른 산은 어디일까. “마나슬루는 산악인들 사이에 등정이 비교적 쉽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3번 만에 올랐어요. 산이 받아주면 쉽고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아요.” 산악인의 의지로만 정상을 밟은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남은 봉우리는 5개. 김 씨는 기회가 된다면 5년 안에 등정을 끝내고 싶다고 했다. 14좌 완등 후 김 씨의 다음 목표는 뭘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나눔 캠프를 운영하고 싶어요. 야영과 취사를 하면서 장애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위안을 얻고, 비장애인은 봉사와 희생정신을 배우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8년만의 인터뷰… 여유-중후함 넘쳐나 뿌듯▼

김홍빈씨 취재를 마치며

김홍빈 씨를 처음 인터뷰한 것은 2007년 7월이었다. 그해 5월 장애인으로는 세계 네 번째,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고 귀국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을 때였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가 손을 불쑥 내밀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손가락이 없는 손은 밋밋하고 뭉뚝했지만 참 따뜻했다. 손가락을 잃은 연유를 설명하면서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손가락이 없다고 기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8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등산복 차림인 줄 알았더니 멋진 콤비 차림이었다. 전보다 여유가 넘쳤고 중후함이 느껴졌다. 그는 겸손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이다. 인터뷰 도중 그가 쓴 시(詩)를 봤다고 했더니 “아, 그거 제가 쓴 게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히말라야 등반에 도움을 준 순천메디팜병원 위계룡 원장이 써 준 것이라고 했다. ‘손’이라는 제목의 시다.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은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읽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 ‘조막손 산악인’을 위한 헌시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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