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천재지변과 패닉 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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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심판의 날이 왔습니다.” 1883년 11월에 하늘에서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졌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때를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며’라고 묘사한다. 사람들은 드디어 심판의 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울부짖고 교회에 나가 밤을 새웠다. 귀중품을 싸가지고 산으로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자들이 단순한 대유성우(大流星雨) 현상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33년마다 태양계로 돌아오는 템플 터틀 혜성이 남겨 놓고 간 대유성우 현상이었다.

1938년 미국에서 화성인이 공격해 온다는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됐다. 방송을 사실로 믿은 약 100만 명이 피난길에 나섰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공포스러운 행동으로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1969년 4월 4일 캘리포니아주는 대지진으로 파괴된다’는 예언이 번졌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캘리포니아주를 떠나는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정부에서 사실무근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2011년 봄 일본 동북부 지방에 규모 9.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강력한 지진에 이은 쓰나미가 동북부 해안지방을 강타했다. 쓰나미의 바닷물은 후쿠시마의 바닷가에 세워진 원자력발전소를 강타하면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본 동북부 지방으로 방사능 공포가 휩쓸고 지나갔다. 많은 일본인이 고향을 떠났다. 그런데 방사능이 동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온다는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공포감이 확산되자 정부는 방사능 영향은 없다고 설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사능이 제트기류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우리나라에 비가 내릴 때 섞여 내릴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필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소문을 사람들이 믿는 것이 의아했다. 그런데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에게 전혀 방사능 영향이 없다고 말했는데 비가 약간 내리는 날에도 모든 학생이 우산을 쓰고 나왔다. 비가 아주 조금 올 때 남학생들은 흔히 모자나 후드를 덮어쓰는데 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같은 날 휴교령을 내렸다. 의사인 형님은 비가 내렸던 날에 평소 환자의 30%도 안 오더란다. 골프장을 경영하는 친구는 비가 오는 날 예약을 했던 150개 팀에서 무려 120팀이 해약을 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과학적 권위를 갖고 있는 한림원 과학자들이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 무슨 심리란 말인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전쟁, 경제 불안, 정치 위기 등 자신의 주위에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불안을 갖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언비어를 잘 믿는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으로 바뀌고 결국 행동으로 동요돼 사회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다. 특히 날씨와 관련된 천재지변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번 달에도 태풍 ‘미탁’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미래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가 심한 자연재난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자연재해가 닥쳐도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분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유성우#방사능#기후변화#유언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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