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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종석]바람은 극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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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종석]바람은 극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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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20일 로스앤젤레스 인근 리비에라CC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을 취재했다. 기자가 탄 미국행 360t의 보잉 747 항공기는 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동안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에 자주 요동을 쳤다. 비상구 옆자리에서 지난해 8월 개봉한 영화 ‘최종병기 활’을 뒤늦게 관람하던 때였다. 최고 신궁으로 나오는 주인공 남이의 마지막 대사가 마음에 울림을 남겼다.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바람마저 돕지 않는구나”라며 비웃던 청나라 명장 쥬신타는 남이가 쏜 회심의 화살에 절명했다.

영화 속 남이와 달리 이번 골프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애를 먹었다. 순간 최고 초속 15m의 강풍에 속절없이 휘청거리는 아름드리 야자수처럼 선수들의 스코어도 널을 뛰었다. 이 정도 바람에는 골프채를 고를 때 평소보다 3클럽 이상 차이가 나고 좌우로는 50야드까지 편차를 보인다. “바람은 피부에 닿거나 귀로 지나가는 느낌을 통해 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나무와 깃발을 통해 보인다.” 득도한 듯 대비책을 내놓았던 최경주마저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옥외 경기장에서 하는 스포츠 종목은 대부분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양궁과 골프는 풍향과 풍속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바람이 불면 오조준을 해야 하는 것도 똑같다. 그린이 과녁이라면 홀컵은 엑스텐(10점 만점 중에서도 지름 6.1cm가 정중앙)이라는 말도 있다. 원리가 비슷해서인지 유명 양궁인 중에는 유난히 골프 고수가 많다. ‘골프 지존’인 신지애는 초등학교 시절 양궁선수 경험이 골프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한국 양궁이 수십 년간 세계 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키는 데는 올림픽, 아시아경기 등 주요 대회에 앞서 철저하게 바람에 대비한 효과도 컸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당시 양궁대표팀은 대전체육 고교 훈련장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했다. 황량하고 변화무쌍한 돌풍이 자주 부는 환경이 베이징 경기장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취재를 갔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일이다. 8월의 그리스에는 에게 해에서 멜테미라는 바람이 부는데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거셌다. 게다가 양궁장은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으로 말굽 모양으로 생겨 돌개바람이 심했다. 표적지가 아니라 허공을 겨냥하는 일도 나왔다. 올림픽에 앞서 바람으로 유명한 유럽 지역과 제주에서 훈련했던 양궁대표팀은 아테네에서 한국선수단이 딴 금메달 9개 중 3개를 휩쓸었다. 특히 여자 양궁 2관왕에 오른 박성현은 남자선수들이 쓰는 44파운드의 인장강도를 지닌 활로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심술을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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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김경욱은 화살이 과녁 정중앙 초소형 카메라를 맞힌 ‘퍼펙트 골드’로 화제를 뿌렸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신궁은 마음으로 활을 쏴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과녁을 꿰뚫는다고 한다. 어찌 활뿐이랴.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바람을 맞는다. 올해 같은 선거철에는 특히 심해진다. ‘뭔 풍(風)’으로 끝나는 신조어가 쏟아진다. 스포츠나 정치나 바람을 잘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바람둥이로 전락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부진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때 참선에 매달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모든 건 올곧은 마음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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