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가도 ‘세습’은 남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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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씨 사망 9일전 본보 기자와 ‘마지막 인터뷰’
“못사는 北보다 갈라진 南이 더 걱정돼 김정은, 개혁 개방 안할땐 비판 받을것”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87·사진)는 10일 사망하기 9일 전인 1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지난달 말 북한의 3대 세습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대해 “그가 잘해서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 개방을 이끌면 칭찬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벌써부터 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 것은 이르다. 이제 막 얼굴을 드러냈으니 시간을 가지고 좀 지켜보자”며 평가를 유보한 뒤 “북한의 본질적인 문제(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건, 또 다른 누가 후계자가 되건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1997년 탈북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3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김정은에 대해 “그깟 놈 알아서 뭐 하냐. 그깟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말했었다. 그런 황 전 비서가 후계자로서 공개 행보를 갓 시작한 김정은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자제한 것으로 볼 때 그는 김정은에 의한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 전 비서는 1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났다. 지난해 7월 21일 동아일보 방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기자와 처음으로 만난 이래 열 번째 만남이었다. 황 전 비서는 이날 “조만간 김정은에 대해 나의 공식적인 견해를 밝힐 때가 올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한보다 남한이 더 걱정된다”며 “천안함 폭침사건을 북한이 했다고 믿는 사람이 30%밖에 안 되고 북한에 쌀을 주는 문제로 싸움이나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북한보다 월등하게 잘사는 남한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상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해 전 국민이 사상적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황 전 비서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남한 주민들을 사상적으로 무장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지난해 8월 7일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동아일보를 방문해 사내 학습조직인 ‘남북한 포럼’ 소속 기자 20여 명을 상대로 특별강연을 했다. 이어 같은 달 19일 동아일보 인터넷 방송 뉴스프로그램인 ‘동아뉴스스테이션’에 출연해 북한 민주화에 관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동영상=딥포커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인터뷰 (풀영상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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