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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7·1 경제개혁 3년 현장을 가다]분홍원피스 ‘富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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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7·1 경제개혁 3년 현장을 가다]분홍원피스 ‘富의 상징’

동아일보입력 2005-07-04 03:13수정 2018-08-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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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生家의 매점
6월 29일 김일성 주석의 평양 만경대 생가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 판매원들이 남측 방문객들에게 공예품과 그림 등 기념품을 팔고 있다. 주석 생가가 바로 보이는 ‘지근거리’에 매대가 생기리라고는 2004년 방문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평양=신석호 기자
《북한이 2002년 7월 1일을 기해 개인과 기업 등 생산 주체들의 의욕을 자극하기 위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단행한 지 만 3년이 흘렀다. 북한은 이듬해 3월엔 종합시장을 도입하는 등 분권화와 시장화를 뼈대로 하는 경제개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개혁 3년은 북한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본보 신석호 기자가 북한에서 인도적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회장 이일하 목사)의 회원 자격으로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3박 4일 동안 평양 남포 등 현지를 다녀왔다. 2002년 7월 이후 다섯 번째 방북 취재다. 》
2005년 7월의 평양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거리를 오가는 주민들의 화려하고 다양한 옷차림이었다.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 일색이던 여성들의 외출복은 총천연색 그 자체였다. 더운 날에는 색색의 모자로, 비가 오는 날에는 색색의 장화로 멋을 냈다. 스타일도 현대적이어서 서울 명동 거리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여성도 많았다.
칙칙한 쑥색 인민복을 주로 입었던 남성들 역시 색색의 노타이 남방셔츠에 검은색과 남색 양복바지를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혹시 북한 당국이 남측의 방북단을 의식해 미리 좋은 옷을 배급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주민들의 옷차림은 북한 경제개혁 3년의 결과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취재 결과 후자였다. 개혁 3년, 북한 지도부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제 북한 경제를 끌고 나가는 주체는 국가나 집단이 아닌 ‘개인’이다. 경제 전면에 개인이 등장하면서 ‘무역’이 확대되고 있다.
이제 돈 버는 재주를 가진 개인들은 숨기지 않고 고급 소비를 할 수 있다. 분홍색 원피스와 양산, 빨간색 장화 이런 것들은 모두 지금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부(富)의 상징이다.
세련된 중국 의류가 실시간으로 평양 거리를 누비는 것은 2002년 경제개혁 이후 확대된 대외 무역의 증가 현상을 나타낸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2004년 4월 이후 1년 3개월 만에 다시 찾은 북한 이곳저곳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감지됐다.
▼김일성 생가 코앞에서도 장사 南측 손님위해 공예품등 팔아▼

평양 천막 매점
지난달 29일 평양 개선문 부근에서 목격한 현대식 천막 매점. 인근 건물에서 전기를 끌어와 냉장고와 아이스크림 제조기, 생수기를 가동하고 있다. 평양=신석호 기자
평양 주민의 통행이 잦은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주변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던 간이 매대는 한바탕 구조조정을 겪은 뒤였다. 수가 줄었지만 설비는 현대화됐다.
세련된 매대 천막 속에는 어김없이 냉장고와 아이스크림 제조기, 생수기가 비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100원(북한 원), 빙수는 20원이다. 평균적인 북한 직장인의 한 달 봉급이 4000∼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평양 만경대 생가는 엄숙한 성지(聖地)라기보다 남측 방문객들의 편의를 더 고려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2003년 3월 세 번째 방문했을 때는 생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간이 매대가 있었을 뿐이었다.
6월 29일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생가가 바로 보이는 가까운 숲 속에서 판매원들이 그림과 공예품 등을 팔고 있었다.
북한은 올해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다. 세계식량계획(WFP)이 3일 긴급보고 27호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원 부족으로 노인층과 소학교(초등학교) 학생, 가난한 도시가구 360만 명에게 식량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SOS를 칠 정도다.
북한 전역의 거리는 물론 남포시 남포육아원 등에까지 ‘올해 공동사설에서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수행하자’는 구호가 걸려 있었다. 올해 북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주공(主攻) 전선은 바로 농업이다.
6월 30일 평양 낙랑구역 도로변 텃밭에서 ‘○○○포전(圃田·논밭)’이라고 쓰인 대리석 표지판을 목격했다. 1일 방문한 묘향산 보현사 인근 텃밭에도 ‘청년포전-도라지-250평’이라는 나무 안내판이 서 있었다.
북한은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개인 또는 10명 이내의 소규모 집단이 포전을 가꾸고 생산물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일찍 보리를 수확한 밭에서는 옥수수 이모작이 막 시작됐다. 한국과 일본 등이 지원한 쌀을 부지런히 운반하는 트럭을 여러 대 목격할 수 있었다.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등이 젖소와 축산기계를 지원한 평양시 강동군 구빈리 협동농장의 임귀남 지배인은 “남측 지원 덕분에 지난해 농장 총수입이 1억500만 원으로 2003년의 6000만 원에 비해 2배 가까이로 뛰어올랐다”고 말했다.
6자회담 복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일까? 거리에서 미국을 공격하는 격한 구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평양=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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