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2주가 낙태 한도”… 세부적 요건은 국회에 결정 맡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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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의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으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22주를 태아의 독자 생존 시기라고 하고 있다.”

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 기간 40주 전체의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형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선고하면서 결정문을 통해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한도를 공개했다.

A4용지 64쪽 분량의 헌재 결정문에는 WHO와 국제산부인과학회(FIGO), 국내 산부인과 학계의 연구 자료에 따라 임신 기간 40주가 1단계(1∼14주), 2단계(14∼22주), 3단계(22주 이후)로 나뉘어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 임신 단계별로 나눠 어느 시점에서 자기결정권이 생명권보다 더 우월한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 “임신 22주가 낙태 한도”… 그 이후는 처벌

헌법재판관 9명 중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 7명은 낙태 처벌이 위헌이라고 봤다. 하지만 낙태 허용 임신 기간과 조건, 위헌 조항의 폐기 시점 등을 놓고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유 소장과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 등 4명은 다수의견에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국가가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평의에서 맨 마지막에 투표를 하는 유 소장과 서 재판관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의견은 또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를 처벌할 수 없는 법적 공백은 용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 소장 등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지 않고, 단순위헌 결정을 하면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지는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다수의견은 임신 22주라는 한도 외에도 ‘결정가능기간’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결정가능기간은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다. 다수의견은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 가능 여부를 파악하고 숙고 끝에 낙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 “임신 14주까지 전면 허용”… 낙태죄 즉시 폐기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은 다수의견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임신 14주까지는 제한 없이 낙태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FIGO 연구 결과를 인용한 결정문에서 “그 시기에 적절하게 수행된 낙태는 만삭 분만보다도 안전하며, 이후의 낙태는 수술방법이 그 이전보다 복잡하다”고 밝혔다. 그 단계를 넘어 임신 2단계 무렵까지의 낙태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아 여부를 알 수 있어 선별적 낙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석태 재판관 등 3명은 현행 형법 조항을 단순위헌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낙태죄 처벌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만 헌재가 다수의견으로 국회에 내년 말까지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한 만큼 국회는 다수의견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법을 바꿔야 한다. 임신 22주 한도 안에서만 낙태를 허용하되, 어떤 조건에서 허용할지는 국회가 정해야 한다. 만약 국회가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임신 14∼22주는 조건부 허용한다면 헌재 다수의견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 낙태 처벌 유지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 등 2명은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 지금 낙태죄 위헌, 합헌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며 합헌 의견을 냈다. 조 재판관 등은 미혼모들이 불이익을 보는 건 낙태의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임신한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혼모에게만 임신과 육아의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양육책임법’을 만들어 미혼부(未婚父)의 책임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김예지 기자 yeji@donga.com
#낙태#국회#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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