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의 공정한 이미지] ‘연출’ 같은 가뭄 사진, 사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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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눈에 띈 건 이곳이 얼마전까지 낚시터로 이용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낚시용 좌대와 거북등처럼 말라 터진 바닥이었다.
저수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눈에 띈 건 이곳이 얼마전까지 낚시터로 이용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낚시용 좌대와 거북등처럼 말라 터진 바닥이었다.
저수지 상류에는 잉어의 사체가 곳곳에 보였다
저수지 상류에는 잉어의 사체가 곳곳에 보였다
첫번째로 발견한 잉어로는 가뭄에 대한 설명이 잘 안되는 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발견한 잉어로는 가뭄에 대한 설명이 잘 안되는 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수초 사이에 나란히 죽어 있는 잉어 두 마리를 발견했다
수초 사이에 나란히 죽어 있는 잉어 두 마리를 발견했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대낮이지만 플래시를 이용해 보았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대낮이지만 플래시를 이용해 보았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태양 밑에 놓여 있는 잉어에만 플래시를 터뜨려보았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태양 밑에 놓여 있는 잉어에만 플래시를 터뜨려보았다
같은 저수지에서 전 날 찍은 사진에서도 풀 위에 놓여 있는 잉어 사체를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저수지에서 전 날 찍은 사진에서도 풀 위에 놓여 있는 잉어 사체를 발견할 수 있다.
5월 30일자 동아일보 지면
5월 30일자 동아일보 지면
누가 봐도 연출처럼 보이는 사진을 신문 1면에 실었다. 30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사진이 그거다. 사진 설명은 “바닥 드러낸 용인 저수지 - 29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저수지가 계속되는 가뭄으로 바싹 말라 바닥을 드러냈다. 잡초만 무성한 땅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폐사한 물고기만이 한때 여기가 저수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전국의 극심한 가뭄으로 들판도, 농민들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다”였다.

이 사진은 월요일인 29일 오후 1시 40분쯤 찍은 사진이다. 이날 아침 다음 날 신문에 들어갈 사진을 준비하는 회의에서 나온 주제는 “대구는 낮 기온 34도의 폭염과 영농철 맞은 전국 가뭄확산 비상/ 충북 진천 바닥 갈라진 초평저수지, 경기 광주 퇴촌면 우산1리(매내미), 거먹골(영동리) 급수차 지원, 경기 용인 처인구 이동저수지”였다.

오전에 출입처 회의를 마치고 용인 이동저수지로 곧바로 이동했다. 인터넷에 며칠 전 찍은 사진들이 돌고 있어서 장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본 것은 거북등처럼 갈라진 저수지 바닥이었다. 가뭄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사진이었다. 전형적이었던 것만큼 기시감이 컸다. 좀 더 저수지 상류로 이동했다. 갈라진 바닥은 보이지 않기 시작했지만 잉어의 사체가 하나 보였다. 별로 ‘그림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저수지 안쪽으로 움직여 보았다. 수초와 잡초 사이에 바짝 말라가고 있는 두 마리 물고기 사체가 나란히 보였다. 가로로 찍어보고 세로로 찍어보았다. 기본은 되는 사진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욕심이 났다. 강한 태양빛이 머리 위에서 내리 쬐고 있었지만 카메라 플래시를 켰다. 배경을 어둡게 하고 물고기 사체만 도드라지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타고 갔던 차 트렁크에서 신문지를 꺼내 바닥에 누워서 찍어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사진은 쉽게 얻어졌다. 그렇게 20분 정도 촬영을 했다. 너무 쉽게 얻은 사진이어서였을까. 사진이 의심을 받았다.

출근을 하는 도중 SNS로 몇몇 선후배가 “너무 완벽한 사진이다” “잉어는 어디서 가지고 온거냐”는 질문을 했다.

두 마리의 잉어 사체가 풀 위에 놓여 있는 광경은 낯설지만 충격적이었을 것이고 당연히 사진기자가 개입한 사진이라고 생각하셨던 거다.

“요즘 그렇게 찍으면 큰 일 납니다”라는 답문자를 넣었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즉각적이지 않았다. 아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거 라는 느낌이었다. 선수들끼리 연출했으면 했다고 하지 굳이 그걸 우리끼리 숨기냐는 느낌 그런 거 였다.

아… 신문사에서 2,30년씩 일하신 분들도 포토저널리즘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구나. 깊은 반성을 해본다. 보도사진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보도사진의 신뢰성을 위해 내가 한 일이 과연 뭐였을까 그런 반성이었다.

사진을 다시 보니 나 스스로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현장에서는 무심하게 넘겼지만 물고기 밑에서 풀이 자랄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신기했다. 내 사진을 확대해서 분석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노트북을 큰 모니터에 연결하고 사진을 확대해보았다. 1배, 2배, 3배…… 확대를 해보니 풀 위에 물고기 사체가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은 사진 자체가 증명하고 있었다. 풀 대부분이 수초였다. 물 속에서 자라던 풀이니 물고기와 같이 있는 것은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의 잡초들은 물이 마른지 이미 열흘 이상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날 찍은 사진은 총 180장 정도 된다. 평소보다 적게 찍었다. 그리고 180장 중 어떤 사진도 사진기자가 피사체에 대해 손이나 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2마리가 완벽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까. 사진 속 모든 현상을 그것도 인간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우연이라면 설명할 능력이 없다. 사실 “누가 봐도 연출인 사진”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게 지나친 자의식의 발로일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신문에 실려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전 뉴스룸에서 게이트키퍼들이 질문을 했을 때 나는 “현장을 만들거나 훼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만 24시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질문에는 똑같이 답할 수 밖에 없다.

신문사진 대부분이 연출사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건이나 중요 이슈에서 연출은 상당한 위험 요소다. 그래서 신문사와 방송사의 에디터들은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가뭄이라고 하는 게 천재지변이면서도 인간이 관리해야하는 영역일수도 있기 때문에 연출은 자제해야 한다는 논쟁이 있다.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그런 논쟁과 에너지가 합쳐진 사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고 오늘도 기록에 충실한 사진기자들의 땀이 나의 사진 때문에 오해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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