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 City]40여년 산업화 이끌던 철재단지, 이젠 관광객 몰리는 ‘예술 창작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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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화 ‘어벤져스’ 속 문래동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재단지에서 찍은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전동차 전투 장면(왼쪽). 철재단지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 문(Moon)로봇. 예술가들이 인근 철공소와 협업해 2013년 제작했다. 화면 캡처·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재단지에서 찍은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전동차 전투 장면(왼쪽). 철재단지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 문(Moon)로봇. 예술가들이 인근 철공소와 협업해 2013년 제작했다. 화면 캡처·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2015년 1000만 명이 본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미국 할리우드 작품이지만 국내 관객에게는 다른 이유로 친숙하다.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인공 지능로봇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과 어벤져스 슈퍼히어로 6명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곳은 서울시내 한복판. 별이 새겨진 캡틴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의 방패가 마포구 빌딩 사이를 날고, 호크아이(제러미 레너)의 전투기가 여의도 63빌딩 주변을 비행한다. 스크린 속 숨은그림찾기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전투 장면 7분 30초 동안 계속된다.

서울 전투신(scene)의 백미(白眉)는 시민을 가득 태운 채 폭주하는 전동차 속 대결이다. 울트론의 습격으로 선로를 이탈한 전동차는 담벼락과 건물을 잇달아 들이받다가 가까스로 멈춰 선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장면은 영등포구 문래동 철재단지에서 찍었다. 순식간이지만 용접 중인 작업자와 철로 된 각종 재료가 눈에 띈다.

어떻게 보면 생소한 문래동 철재단지는 6·25전쟁 이후 국가를 재건하던 시기 대표적 산업단지였다. 이곳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업체는 1955년 설립한 삼창철강이다. 당시 철강업체라 불릴 만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고물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본격적으로 철재단지가 자리를 잡은 것은 1968년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설립되면서다. 그즈음 청계천을 덮고 고가도로를 지으면서 인근의 스테인리스 제조업체들이 문래동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까지 업체가 들어서면서 대규모 철재단지가 됐다.

산업화 시대 전성기를 누리던 철재단지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주변 지역이 개발되고 공장들이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쇠퇴가 시작됐다. 설상가상 1997년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지금은 전성기의 절반 수준인 철공소 1300여 개가 남아 있다.

공장들이 떠나고 음침해진 빈자리는 2000년대 초 예술가들이 들어와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홍익대, 대학로 같은 곳의 임차료가 폭등하면서 문래동까지 밀려난 것이다. 당시 문래동 일대 임차료는 홍익대나 대학로의 반의 반값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주로 반지하의 낡은 창고 등을 개인 작업공간으로 사용했다. 예술가들이 몰리면서 주변 철공소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공연이나 전시회가 열렸다. 이곳을 ‘문래동 창작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초기 20여 명에 불과했던 예술가는 현재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처음 이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창작촌이 입소문을 타며 관광객이 몰렸다. 하루 종일 쇳가루를 마시며 작업하는 철공소 근로자들에게 관광객의 카메라 세례가 반가울 리 없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 ‘일하고 있습니다. 초상권을 지켜주세요’ 같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카페나 술집도 생겨나면서 임차료도 올랐다.

이들의 갈등은 예술가들이 철공소와 협업해 여기저기 공공미술작품을 만들면서 조금씩 풀렸다. 철공소에서 공급한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예술교육도 한다. 기술자와 예술가의 뜻밖의 만남.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문래동 철재단지는 그렇게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은 채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어벤져스#문래동#산업화#영화#철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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