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의 SNS 뒤집기] 탄핵정국, 우빨의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1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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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前대통령 삼성동 사저 앞에 몰려든 지지자들. 동아일보DB
박 前대통령 삼성동 사저 앞에 몰려든 지지자들. 동아일보DB

‘우빨(우익 빨갱이).’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온라인을 강타한 히트어다. ‘국가 기관과 공권력에 저항하는 우익 세력’이란 뜻이다. 주로 친박(친박근혜) 보수단체의 폭력적인 행태를 비판할 때 쓰인다. 누리꾼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우빨’의 사용설명서는 이렇게 요약된다.

“빨갱이, 선동세력 등 철지난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매도하는 사람들에게 한 방 먹일 때 사용하시오.”

관련 자료로 친박 보수 단체의 헌법재판소 판결 불복 발언, 폭력 집회, 경찰서 앞 난동, 기자 폭행 등의 사례가 인터넷에 떠돈다. 하지만 특정 대상을 향한 비판, 비아냥거림이 이 신생 언어의 전부가 아니다.

이 단어에 담긴 누리꾼의 바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를 갉아 먹는, 낡은 언어의 종말을 기대하는 마음을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한 것이 ‘우빨’이다.

그동안 시대에 맞지 않는 권력은 낡은 언어를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공식적이었든 아니든, 박근혜 정부가 주로 사용하던 장르가 ‘좌우 이데올로기’였다.

박근혜 정부는 그들이 좌편향이라고 분류한 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종북 세력을 차단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 발행을 밀어붙일 때에도 ‘좌 편향’이란 정치적인 수사를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 당시 한 1인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배후가 의심된다”는 취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김평우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헌재나 탄핵 반대 집회에서 한 발언 또한 장르는 달라도 이 시대의 언어와 동떨어져 있었다. 촛불 집회 당시 온라인에는 “우리는 국정 농단의 문제를 외치는데 저들은 ‘종북’ 운운하며 자신들만의 애국에 힘쓰고 있다”라는 비판 글이 많았다.

결국 치유의 언어를 바랐던 현실과 권력 간에 큰 간극이 생겼다. 그리고 그 사이를 ‘불통’이 채웠다.

12일 청와대를 떠난 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 앞에서 얘기를 나눈 사람들은 낡은 언어 사용에 익숙한 정치인과 자신의 지지세력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박근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좌파들이 다 조작하고 모의해서 부당하게 탄핵된 것”이란 구호와 플래카드가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었다. 권력에 내려오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이 마주한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언어들이었다.

▶ [채널A 영상] 삼성동 사저의 24시간…사람·차 수시로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어느 집단의 언어가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우빨의 탄생은 낡은 언어의 청산을 부르는 시대적 요구일지도 모른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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