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적으면 하루종일 우울… 친구수 늘리려 ‘계모임’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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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행복원정대/초등 고학년의 행복 찾는 길]<6> 스트레스가 돼버린 SNS

학교 운동장도 동네 놀이터도 아니다.

요즘 10대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모이는 곳은 소셜미디어다. 빽빽한 학원 스케줄 때문에 생일잔치 일정 잡기도 어려운 아이들은 학원 수업 짬짬이 페이스북(페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카스)에 들어가 남 흉도 보고 고민도 털어놓는다.

그런데 소셜미디어가 마음 편한 소통의 공간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좋아요’와 친구 숫자를 서로 견주어보며 우쭐해하기도, “나 왕따 아닐까” 걱정도 한다. 마치 소셜미디어 마케팅 직원처럼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 페북이나 카스의 친구와 팔로어 수 늘리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 ‘좋아요’, 친구, 팔로어 늘리기 경쟁

‘7월 15일까지 느낌 715개만요!’

카스에 열심히 글을 올리는 초등학교 5학년 권모 양은 7월 15일까지 카스에 올린 글의 ‘느낌’(페북의 ‘좋아요’에 해당)을 715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 친구들만 동원해서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렵다. 권 양은 친구들이 귀띔해준 ‘느낌’만 눌러주는 전용 계정을 이용한다. 계정 ‘느공이’(느낌 공유해주는 사람) ‘느공해주는 천사’(느낌 공유해주는 천사) ‘느낌 필요하면 언급하숑’ ‘느낌 달아줌’ 등을 자신이 올린 글에 태그하면 해당 계정이 느낌을 눌러준다.

5학년 김모 군은 ‘멤놀(멤버 놀이)’로 방문자 수를 늘린다. 멤놀이란 유명 아이돌의 이름을 딴 가짜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는 걸 뜻한다. 김 군은 방탄소년단의 인기멤버 정국의 본명인 ‘전정국’으로 카스 계정을 개설해 “설현 누나, 오늘 잘 지냈어?” 같은 글을 올린다. “이렇게 하면 하루 방문자 수가 500∼600명은 훌쩍 넘어요. 친구와 방문자 수를 늘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죠. 자랑할 만한 목표치만 채우면 내 이름으로 바꿀 거예요.”

친구 수 늘리기 계모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카스의 계모임 계정 ‘멤놀 친구만들기’에는 8만9000명 이상이 참여한다. 게시글에 ‘친구 걸어주세요’ ‘ㅅㅊ(선친구 걸기·상대방이 먼저 친구를 걸어달라는 뜻)’ 같은 댓글을 달면 그걸 본 사람들이 서로 친구를 신청해준다.

페북은 회원 가입 조건을 만 14세 이상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아 아이들은 가짜 생년월일로 쉽게 계정을 만든다. 페북은 프로필 사진(프사)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또래 아이들의 믿음이다. 친구 수를 늘리려면 풍경 사진은 좋지 않다. 본인 사진도 별로란다. 셀카를 올리면 반응이 없거나 최악의 경우 페친(페북 친구)이 끊길 수도 있다. 그 대신 연예인이나 인터넷 얼짱 사진을 올린다. 특히 여학생들은 프사가 절대적이라고 여기는 만큼 프사 올리는 노하우도 풍부하다.

“프사가 예뻐야 모르는 남자들로부터 ‘몇 살이세요?’라는 작업 멘트가 날아와요.”(4학년 때 페북을 시작했다는 6학년 정모 양)

“너무 연예인스럽지 않고 훈녀스럽게 나온 사진을 써야 해요. 일반인스러운데 예뻐야 하는 거죠. 얼짱들의 희귀한 사진이 좋아요. 친구들이 나랑 똑같은 사진을 쓸 때가 있어요. 엄청 기분 나쁘죠.”(6학년 강효진 양)

“화장을 하거나 얼굴이 예쁘게 나오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 올려요. 연예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시태그로 달거나 ‘소통해요’ 해시태그를 붙여 방문자 수를 늘리죠.”(4학년 박모 양)

○ “페북 팔로어는 300, 카스는 500은 돼야죠”

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요, 느낌, 친구와 팔로어 숫자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 숫자가 자존감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카스 방문자 수는 내 인기 점수라고 생각해요. 방문자 수가 많으면 ‘나는 강하다’ ‘다른 친구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죠.”(5학년 박시은 양)

“페친이 많으면 학교에서 잘나가는 애처럼 보여요. 페북에는 중학교 언니들이 많아서 페북에서 놀다 보면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죠.”(6학년 최윤정 양)

거꾸로 숫자가 적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고민해서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 수가 친구보다 적으면 우울해요. 학원에서도 페북을 계속 ‘새로고침’ 하면서 숫자를 확인하게 돼요.”(5학년 유태민 군)

“친구들이 내가 올린 게시물에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들이 올린 게시물에는 ‘좋아요’를 누른 걸 발견했을 때, 혹시나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모르는 친구들이 봤을 때도 내가 얼마나 유머 있는 사람인지, 친구가 많은 사람인지를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숫자에) 신경이 쓰여요.”(4학년 정민지 양)

“여자애들은 얼굴이 예쁘거나 인기가 많으면 친구 수가 올라가요. 친구 수가 적으면 내가 좀 못생기고 인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4학년 박모 양)

요즘은 학교에서 ‘짱’ 노릇을 하려면 페북이나 카스의 추종자 숫자가 어느 정도는 나와 줘야 한다.

“좀 잘나가는 애라면 페친 300명은 기본이죠. 중학교 언니 오빠 페친이 많을수록 인정받아요. 저도 언니가 중학생이어서 페친 중에 중학생 언니가 많다 보니 친구들이 따르는 편이죠.”(6학년 김가희 양)

“인스타그램은 팔로어 200명, 페북은 300명, 카스는 500명 정도 되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죠. 소셜미디어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다른 학교 애라도 친구 신청을 해서 ‘나 어느 학교 다닌다’고 하면 친해져요.”(인스타그램 팔로어가 735명인 6학년 전혜린 양)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박지혜 채널A 기자
#초등학생#고학년#행복#sns#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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