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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겐 “일만 아는 엄마”… 상사에겐 “집만 아는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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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겐 “일만 아는 엄마”… 상사에겐 “집만 아는 직원”

손영일 기자입력 2015-04-10 03:00수정 2015-04-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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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3>이중고 시달리는 직장맘
“아침엔 빨리 출근해야 해 밥을 늦게 먹는 아이에게 윽박질러요. 정작 출근도 늦어져 회사에선 불성실한 직원이 되고요. 아이 준비물 꼼꼼히 못 챙겨 어린이집 교사에겐 굽실거려야 하죠.”(맞벌이 주부 김모 씨·33)

“신혼 때부터 각자 할 일은 알아서 하자는 주의였어요. 그런데 육아는 누구의 일인지 애매하더군요. 아내는 자기가 더 많이 한다고 불만이고, 저는 ‘왜 다른 집 엄마들과 달리 유독 힘들어하냐’고 화내죠.”(하모 씨·40)

맞벌이를 하는 엄마와 가족들은 ‘행복’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집안일과 회사일을 병행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중산층 가족 구성원 10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의 행복도가 평균 7.1점으로 전업주부(7.5점)보다 낮았다. ‘엄마’의 역할(아내와 며느리 역할 포함)을 잘해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맞벌이 주부(7.5점)에 대한 평가가 전업주부(7.9점)보다 낮았다.

사회심리학 박사인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자녀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의 결혼 만족도가 높고, 그 후엔 직장 여성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런 경향이 한국에서도 확인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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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는 “회사만 아는 죄인”

결혼 생활 초반에 전업맘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아이가 태어나 성장해 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아이에게만 시간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직장맘들의 ‘죄의식’은 심각했다.

“요즘은 온전히 엄마 젖으로만 아이를 키우는 ‘완모’가 유행이죠.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 두 번은 분유를 먹이는데, 그럴 때마다 죄인이 되는 기분이에요.”(박모 씨·31·회사원)

“먼 곳에 사시는 친정 엄마를 새벽같이 모셔와 아픈 아이를 맡긴 뒤 출근한 적이 있어요. 그러고선 3일 연속 야근을 했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엄마와 아이를 고생시키나’ 싶었죠.”(최모 씨·41·회사원)

자녀가 학령기가 되면 직장맘들은 전업주부네 아이보다 성적이 뒤질까 봐, 성격이 비뚤어질까 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만큼 집안 식구들과 부딪칠 일도 많아진다.

“아이가 숙제를 안 해놓으면 ‘아, 내가 미쳤구나’ 싶을 정도로 욕과 체벌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얹어 아이에게 푸는 형편없는 엄마인 거죠. 그럴 때마다 상상을 해요. 회사를 휴직하거나 그만두면 어떨까.”(황모 씨·45·회사원)

“엄마가 집에 있는 아이들은 낮에 숙제하고 학원 가고 저녁 챙겨 먹고 일찍 자요. 우리 애들은 내가 퇴근해야 저녁 먹고, 한밤중에 숙제하고, 늦게 자죠. 어느 날 아이에게 소리 질렀더니 울면서 그러더군요. 엄마가 불쌍해서 운다고요. 낮에 일하고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싶대요.”(김모 씨·41·회사원)

○ 직장에선 “집밖에 모르는 죄인”

‘불성실한 엄마’들은 회사에서도 반쪽짜리 직원 취급을 받을까 노심초사한다. 공기업에 다니는 주부 강모 씨(45)는 “친정 엄마에게 육아 다 맡기고 직장 일에 정신없는 엄마, 집안일에 신경 쓰느라 회사에서 왕따당하는 직장맘 모두 신(新)칠거지악의 죄인들”이라고 자조했다.

육아휴직이나 탄력근무제 같은 제도에 회의적인 엄마들도 적지 않았다. 강모 씨(32)는 “첫아이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팀장이 나를 승진시키지 않았다. 그 팀장 밑에 있던 여자 직원들은 나 빼고 다 그만뒀다”고 했다. 조모 씨(31)는 “임신 중 일을 적게 하지 않았는데 ‘이번 평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라’라는 말을 들었다”며 불쾌해했다.

이모 씨(36)는 공공기관과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다 지금은 민간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공공기관 근무 시절 경험담을 들려줬다. “상사가 육아의 어려움을 모르는 싱글 여성이어서 탄력근무를 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아이가 아파서 일찍 퇴근을 했더니 그 상사가 경영관리팀에 가서 ‘애들은 왜 이렇게 아픈 거냐’라고 했대요. 그 상사가 어느 날 큰 개를 데리고 출근한 적이 있었어요. 친구가 출장 가면서 맡겼는데 혼자 있어본 적이 없는 개여서 데리고 왔다나요. 아이 아픈 건 뭐라 하더니….”

공기업에 다니는 주부 김모 씨(32)는 “10년까지 버티는 게 목표”라고 했다. “10년까지는 직장 다니느라 쓰는 돈을 감안하면 맞벌이와 외벌이가 같다고들 해요. 그 이후부터는 외벌이와 수입 격차가 생긴다던데, 10년을 버티는 게 너무 힘드네요.”

■ 딸이 결혼하면 나처럼?

“내 또래는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어요. 집과 일터에서 느끼는 만족의 합은 전업주부나 미혼 직장 여성보다 클지 모르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남는 게 없어요. 제 딸은 여유 있게 살았으면 해요.” (맞벌이 주부 강모 씨·31)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데, 아이를 위한다고 직장을 그만둔 것이 내 인생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에게는 아이를 낳더라도 직장을 관두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전업주부 김모 씨·37)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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