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12월 오면… 한숨 커지는 이땅의 ‘막내 미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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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회식 시즌 스트레스

중견업체 W사의 대리, 사원급 막내 직원들은 지난달 중순부터 서로의 눈치를 보며 한숨만 쉬고 있다. 매년 12월만 되면 조직되는 ‘송년 회식 태스크포스(TF)’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큰 부담감을 안겨주는 것은 회식의 내용과 그에 대한 평가가 TF 팀원들의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TF 참여는 공식적으로는 자원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서별 인원 할당 때문에 ‘짬밥’에서 밀리는 주니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명 안팎인 TF 팀원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며 ‘몰래 회의’를 한다. 회식 준비를 한답시고 일상 업무를 소홀히 했다가는 상사들의 눈총을 받기에 딱 좋기 때문. 몇 년 전 이 팀에 참여했던 김모 과장(35)은 “회식 TF는 말단 직원들로 구성된 팀이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며 “윗사람 몰래 행사 전문 업체를 고용하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 즐거워야 할 회식이 스트레스로 돌변

12월은 송년 회식의 달이다. 직장인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위해 팀과 본부, 회사 전체 등 여러 단계의 회식 자리에 참여한다. 물론 송년 회식의 애초 취지는 1년간 쌓인 회포를 풀자는 좋은 뜻에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송년 회식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입을 모은다.

동아일보와 취업포털 사람인은 지난달 19∼21일 전국의 직장인 738명을 대상으로 ‘송년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물었다. 10명 중 4명(전체 응답자의 41.1%)이 ‘매우 그렇다’ 또는 ‘조금 그렇다’는 답을 내놓았다.

송년 회식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역시 술이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에 대한 문항에서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란 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건설업체 과장인 한모 씨(36)는 송년 회식 때마다 벌어지는 술판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다. 맥주 한 병이면 만취 상태가 될 만큼 술이 약한 그에게 임원들은 항상 술을 권했다. 지난해에는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대표부터 임원에 이르는 ‘어르신’ 전원이 그에게 술을 권했기 때문이다. 일부 임원은 “연말 회식 자리에서까지 술을 안 마셔서야 어떻게 승진을 하겠느냐”고 혼을 내기까지 했다.

폭탄주를 8잔이나 받아 마신 한 씨는 회식 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최근에는 ‘송년 회식 필참’이라는 상부 지시까지 떨어졌다”며 “회식 전에 술이 덜 취하게 하는 약이라도 먹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 올해 마지막 ‘불금’을 앗아간 회사

직장생활 4년차인 권모 씨(31·여)는 올해 전체 회식 날짜가 불만이다. 권 씨가 다니는 회사는 올해 송년 행사일을 12월 마지막 금요일인 26일로 잡았다. 직원들은 내심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이날이 ‘권장 휴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권 씨는 “회사가 2014년의 마지막 ‘불금(불타는 금요일)’마저 빼앗아 갔다”며 허탈해했다.

실제로 설문에서도 ‘(회사 또는 부서가) 회식 날짜를 무리하게 잡아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답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 항목을 선택한 사람의 비중은 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응답자(225명)를 제외한 513명 중 23.4%(120명)였다.

W사 직원들처럼 회식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패션업체 대리인 방모 씨(31·여)는 지난달 내내 업무 시간에 서울 시내의 클럽을 배회해야 했다. 회의에서 한 임원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클럽이란 곳에 자주 간다는데, 송년 회식을 그곳에서 해보자”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방 씨는 고생 끝에 적당한 장소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예약 비용이 회사 예산을 훨씬 초과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 씨는 “그렇잖아도 12월이 성수기인 클럽을 빌리기에는 예산이 너무 적다”며 “여기에다 회식 프로그램까지 짤 생각을 하면 퇴사 욕구가 치솟는다”고 말했다.

송년 회식 스트레스는 주로 회사의 팀장이나 임원을 향해 있다.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은 있다. 제조업체 부장인 박모 씨(42)는 “요즘엔 부하 직원들과 같이 저녁을 먹는 횟수가 1년에 다섯 번도 채 안 되는 것 같다”며 “송년 회식에서라도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직장 문화 서비스 기업인 오피스N 관계자는 “술을 강권하는 등 행사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은 구성원의 애사심을 오히려 깎아먹게 된다”며 “최근 유행하는 ‘영화 회식’ 등을 대안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미생#송년#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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