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손가락 예매 19초, 자동 프로그램 9초… 게임이 안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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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대란… 당신이 표를 구할 수 없는 이유

7일 오후 7시 58분.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다.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2분 후에는 드디어 방탄소년단(BTS)의 ‘홈파티’ 행사 예매 시작이다.

BTS 팬들은 티켓 예매 사이트 접속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근처의 피시(PC)방을 찾았다. 또 친구나 가족을 동원해 스마트폰과 컴퓨터 여러 대로 동시 접속을 준비했다.

마침내 시곗바늘이 8시 정각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일제히 사이트로 몰렸다. 응답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도 흰색 화면에 ‘불러오기 중’을 의미하는 동그라미만 계속해서 돌아갔다.

8시 5분. 온라인 커뮤니티에 “망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욕설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간간이 “성공했다. 손이 떨릴 지경” “내가 앞자리 예약에 성공하다니 믿기지 않는다”라는 글도 보였다. 하지만 그 수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8시 15분. 한 티켓 거래 사이트에 “BTS 홈파티 티켓 팝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만3000원짜리 티켓의 가격은 10만 원부터 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팬이 “어차피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기 때문에 남의 티켓을 사도 소용이 없다”는 글을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기 아이돌그룹의 공연이나 주요 개장행사 예매는 오래전부터 ‘하늘의 별따기’다. 30초 만에 모든 티켓이 동나는 공연도 나온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온라인에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티켓을 팔겠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30초 매진’ ‘전석 매진’의 비밀을 파헤쳐봤다.

프로그램만 잘 쓰면 나도 ‘온라인 암표상’

“입금만 해주시면 바로 드립니다!”(매크로 프로그램 판매업자)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자동으로 예매를 도와준다는 ‘매크로(자동)’ 프로그램 판매자는 시원시원했다. 판매자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아 업데이트도 한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검색부터 전달까지 온라인으로 티켓 자동 예매 프로그램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매크로란 원래 사람이 해야 하는 반복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 해줘 작업 효율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이후 온라인 게임 등에 악용되다가 티켓 예매 시장으로 침투했다. 손으로 일일이 클릭을 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도도 높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피케팅(피 터지는 티케팅)’ 현장에서 효자 노릇을 한다. 원래 온라인 암표상들이 쓰던 프로그램인데 이제 일반인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유명 밴드의 공연 예매를 직접 해봤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예매일’ ‘예매 시간’ ‘원하는 좌석’ 등을 지정한 뒤 이 과정을 특정 단축키로 지정한다. 실제 예매를 할 때는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 없이 단축키만 두 번 누르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예매를 하자 예매 1단계에서 4단계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9초에 불과했다. 반면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순수한 ‘마우스질’로 걸린 시간은 19초였다.

이런 매크로 프로그램은 2만∼3만 원에 거래된다. 2배 이상의 웃돈을 줘야 하는 ‘플미 티켓’(프리미엄 티켓의 준말로 웃돈을 주는 티켓을 말함)에 비하면 오히려 싼 편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은 반칙”이라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가격이 싸고 성능이 확실하다 보니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동방신기의 11년 팬이라는 이모 씨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 때문에 짜증은 나지만 이제는 워낙 만연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7만 원→120만 원’ 무서운 온라인 암표

이렇게 만들어진 암표는 당연히 정가보다 비싸다. 인기 있는 공연일수록, 좋은 좌석일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

최근 10대와 20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는 7월 1일 ‘피날레 콘서트’를 연다며 지난달 31일 티켓 예매를 시작했다. 여느 공연이 그렇듯 표는 몇 분 만에 다 팔렸다.

그러나 티켓 거래가 이뤄지는 사이트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8일 오전 티켓 거래 사이트에는 여전히 120여 장의 티켓이 있었다. 문제는 가격. 정가 7만7000원짜리 티켓의 거래 희망 가격이 최소 30만 원에 달했다. 공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스탠딩석 중에서 앞자리에 해당하는 티켓의 가격은 무려 120만 원에 이르렀다.

이 프로그램의 팬이라는 조모 씨(25)는 “120만 원에 티켓을 살 사람이야 없겠지만, 문제는 판매용으로 티켓을 선점하는 암표상 때문에 정작 100명이 넘는 팬이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온라인 암표는 아이돌 공연에만 그치지 않는다.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주말 경기의 프리미엄석은 8일 현재 정가(7만 원)의 2배에 가까운 12만5000원에 올라와 있다. 4만8000원짜리 테이블석의 가격도 장당 8만 원에 달한다.

온라인 암표는 주로 중고 제품을 거래하는 카페나 앱, 티켓 거래 전문 사이트를 통해 거래된다. 소규모 ‘업자’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판매한다. 현장에서 암표를 매매하는 행동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온라인 암표 거래의 경우 제재할 만한 뚜렷한 방법도 없다.

딱, 한 걸음 앞서가는 암표상

티켓 판매 업체들과 공연 주최 측은 온라인 암표를 근절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티케팅으로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자 업체들은 나름의 대응책을 내놨다.

가장 대표적인 건 ‘자동 예매 방지 문자’다. 영문과 숫자를 혼합한 보안문자를 결제 중간 단계에 끼워 넣는 식이다. 사람이 문자를 직접 읽고 입력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뒀다. 매크로의 질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방지턱’이다.

인터파크는 지난해부터 이런 방식을 적용한 ‘안심 예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매크로를 이용한 대량 예매 흔적이 2년 전 포착됐기 때문이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안심 예매 서비스를 시작한 뒤 매크로를 사용한 구매가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옥션 티켓도 비슷한 시기에 자동 예매 방지 문자를 도입했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주소(IP주소)를 모니터링해 매크로를 사용한 비정상적 구매 행위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해 한 아이디당 구매가 가능한 티켓 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이 밖에 공연 주최 측은 티켓 본인 확인제를 강화해 암표 구매자의 입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암표상들도 발 빠르게 변화한다. 본격적인 예매가 시작되기 1, 2시간 전부터 SNS나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선입금 5000원만 해주면 대리 티케팅을 해주겠다’거나 ‘아이디를 빌려주면 대리 티케팅을 해주고 성과금을 받겠다’는 글을 올리며 일대일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메신저의 일대일 익명 채팅 기능을 이용해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몸을 사리겠다는 것이다.

9일 한 중고거래 카페에서 ‘대리 티케팅 전문가’를 자처한 사용자(esc****)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거의 모든 티케팅을 맨 앞자리부터 5줄 이내로 잡아준다”며 “비밀 댓글로 신청해 달라”는 글이 등록돼 있었다. 2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또 다른 글에는 4월 말 매진과 함께 접속 불가 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인기였던 아이돌그룹 ‘하이라이트(구 비스트)’의 공연 티켓 13장을 확보했다는 글도 생색내듯 올라와 있었다.

이들은 업체들이 자동 예매 방지 문자를 입력하도록 절차를 복잡하게 한 것도 “별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나머지 단계에서 속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손을 쓰는 사용자에 비해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체와 암표상들의 물고 물리는 싸움은 경찰의 지속적 단속에도 근절되지 않는 프로야구 현장 암표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티켓팅#암표#플미#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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