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서비스 가시 뽑아야 일자리 새살 돋는다]<5> 한쪽선 무상보육, 한쪽선 규제 강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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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어린이집 보육료 일괄 제한… 교사직 20만개 기피직 전락

김모 원장은 경기도에서 250명 정원의 대형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김 원장은 지난해 남편의 퇴직금을 담보로 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지난해에만 2억 원 정도 들어간 영어 특별활동비에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영어 특별활동비는 유아 1명당 월 10만 원꼴. 하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어린이집 특별활동비로 1명당 3과목에 최대 6만 원을 상한으로 정해 놨다. 이 어린이집은 영어 특별활동비로만 연간 7000만 원 이상 적자가 난다.

그런데도 영어 특별활동을 유지하는 이유는 유치원에 아이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특별활동비 규제가 없는 유치원, 놀이방들은 영어, 발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눈이 높아진 부모들의 요구를 맞춰주지 않으면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3세 이상 아이들의 이탈을 막을 수가 없다.

김 원장은 “1주일에 한 번씩 집을 방문해 가르치는 영어 방문교사도 한 달에 10만 원을 받는데 어린이집은 6만 원으로 3가지 특별활동을 하라는 건 사실상 특별활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유치원과 똑같이 3∼5세 아이들을 돌보는데도 어린이집 특별활동만 규제하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적자가 쌓이는 상황이다 보니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는 좋지 않다. 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월급은 월 140만 원. 지난해에 조금 올렸을 뿐 최근 5년 중 4년간 월급을 동결했다.

김 원장은 “입주도우미로 아이 1명만 돌봐도 한 달에 150만 원 이상은 번다”며 “월급이 적어 보육교사들의 불만이 많지만 경영난과 보육료 상한 규제 때문에 올려주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0∼5세 280만 명의 영·유아는 소득에 상관없이 어린이집 보육료를 전액 지원받는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료 총예산도 지난해 2조3913억 원에서 올해 2조5982억 원으로 약 2000억 원 늘었다.

하지만 민간 어린이집과 보육교사들은 정부의 보육료 지원이 늘어날수록 어린이집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정부 지원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불필요한 규제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과 어린이집들은 정부 규제만 완화해도 1만 개 이상 양질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어린이집에 대한 보육 규제를 유치원 수준으로만 완화돼도 보육교사의 처우가 크게 개선돼 ‘저임금 기피 일자리’에서 ‘괜찮은 일자리’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한다.

○ 보육 규제로 ‘기피 일자리’ 전락한 보육교사

현재 어린이집은 유치원에는 없는 보육료, 특별활동비 상한제 규제를 받는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관리를 통합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 유치원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공통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어린이집 보육료 상한액이 정부가 발표한 적정 보육료 수준인 ‘표준보육비’보다도 적다는 점.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충남의 만 5세 아이 1명당 보육료 상한액은 24만1000원으로 2009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표준보육비 28만4200원보다 4만3200원 적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영난에 빠지는 어린이집이 늘고 보육교사들의 처우가 악화돼 보육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에 따르면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월급은 120만∼150만 원으로 각종 수당을 합쳐 200만∼25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유치원 교사보다 최대 130만 원 정도 적다.

보육교사 한모 씨는 “점심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주 60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데 월급은 몇 년째 똑같다”며 “일은 고되고 월급은 적어 ‘차라리 식당 아르바이트가 낫겠다’는 동료 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낮은 임금 탓에 민간 어린이집이 보육교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경기 안양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올해만 벌써 3명의 보육교사가 그만뒀다”며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다고 신청한 대기명단은 50명이 넘는데도 교사를 구하지 못해 정원을 축소해야 할 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규제완화하면 ‘좋은 일자리’ 1만 개 이상 생겨

보육전문가들은 민간 어린이집의 경영난을 해소하고 보육 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보육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역시 선진국에 비해 낮은 국내 보육서비스 질을 높이고 보육교사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2011년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며 부모들로부터 보육료를 지자체가 정한 상한액의 1.5배까지 받을 수 있는 ‘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가 지난해 이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이용자가 적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보육료 상한 규제를 완화하면 학부모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 무상보육과 관련한 정부의 ‘보편복지’ 기조 등을 의식한 게 영향을 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육비를 더 내더라도 높은 수준의 보육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만큼 보육료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자율형 어린이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9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의 27.5%는 보육료를 더 내더라도 높은 수준의 보육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최근 발표한 ‘한국의 사회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국내 보육 산업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호 타구마 OECD 교육국 수석정책분석가는 “한국은 보육서비스 공급자 간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민간 어린이집이 제공하는 보육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어린이집들은 보육료 상한제 등 정부규제가 완화되면 보육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간 어린이집 중 10%만 자율형 어린이집으로 전환돼도 20만 명에 이르는 보육교사 가운데 1만∼3만 명이 저임금 일자리에서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선진국에서는 보육교사가 대표적인 ‘좋은 일자리’로 꼽힌다”며 “정부 규제가 완화되고 보육료 수준이 현실화되면 민간 어린이집들의 경영난이 해소돼 신규 채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팀원 유재동 문병기 박재명 김철중(경제부) 김희균 이샘물(교육복지부) 염희진(산업부) 김동욱 기자(스포츠부)
#보육교사#어린이집#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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