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속의 중국인 ‘레인보 차이나’]<3>진화하는 국내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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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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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마친 3세대 교포, 전문지식 무기로 新코리안드림 개척

10일 조선족 교포인 서울대 법학대학원 강광문 교수의 연구실. 일본 도쿄대(헌법 전공)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으로 온 그의 서가에는 일본어 서적이 가득하다. 강 교수는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도중 일본어 자료를 보면서 전화로는 중국어로 통화를 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10일 조선족 교포인 서울대 법학대학원 강광문 교수의 연구실. 일본 도쿄대(헌법 전공)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으로 온 그의 서가에는 일본어 서적이 가득하다. 강 교수는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도중 일본어 자료를 보면서 전화로는 중국어로 통화를 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국내 조선족 사회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재외동포에 대한 비자 정책 완화 등으로 많은 조선족이 한국을 방문해 정착하고 있다. 귀화와 국적 회복 등으로 한국 국적을 얻는 사람도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은 45만3800여 명이며 지난해 말까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8만7633명이다. 귀화하지 않고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의 조선족이 190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 내 조선족’은 전체의 약 20%에 이르며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포의 구성이 바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전문지식을 가진 엘리트 계층이 늘고 있다. 조선족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3세대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2008년부터 단순노무 외의 직종에도 취업할 수 있는 장기체류비자(F4)를 조선족들에게도 적용한 것이 이들 3세대 조선족의 한국행을 늘리고 있다.

한국 사회 일부에서 조선족은 한국에 들어와 식당 종업원과 공장 및 건설현장의 근로자 등 ‘3D 업종’에 종사하거나 불법체류자라는 시각에 머물러 있다. 이제 조선족과 한국 사회는 서로 관계 설정을 새로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내 조선족은 2세대에서 3세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기존에 보아왔던 이미지의 조선족들과 달라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지린(吉林) 성 메이허커우(梅河口) 출신인 강광문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39)는 1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교수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내 조선족 1세대는 100여 년 전부터 한반도 국경을 넘어 중국 지린 성 옌볜(延邊) 등 동북 3성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자녀인 2세대가 한국에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와 3D 업종에서 일했다. 3세대는 대학 교육을 받고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외국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강 교수는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3세대 조선족’들의 진출이 늘고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93년에 모집정원 30명 중 지린 성에 배정된 2명 중 한 장의 티켓을 따내 베이징(北京)대 국제정치학과에 입학한 수재다. 졸업 후 법학 분야에서는 중국 최고인 중국정파(政法)대 석사과정에 들어가 3년을 다니면서 1학년 때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대형 로펌 중룬(中倫)법률사무소에서 활동했다. 이어 일본 도쿄대 법학과에서 석·박사학위 취득과 교직생활 등 10년을 보낸 후 2011년 3월 계약 4년의 조교수로 서울대에 초빙됐다.

서울대에 조선족 교수는 연변대 출신으로 2009년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나노융합학과 전임 교수로 임용된 박원철 교수(42)에 이어 두 번째다.

강 교수는 “3세대 조선족의 분포는 대학 재학생(서울대에만 100여 명),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 내 중국 관련 업무 근무자, 귀화한 부모를 따라온 동반 입국자, 한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주재원 등으로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소개했다.

전북 전주 우석대 최훈 교수(51·한약과)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최연 겸임교수(51)는 부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대 무역학과 김경화 겸임교수(41)는 “한 학기 강의가 끝나도 내가 조선족인 것을 모르는 학생도 있다”며 “조선족과 한국사회의 거리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곳곳의 전문직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조선족 엘리트 10명은 2011년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백산서당)라는 책을 펴내 자신들의 존재와 고민 등을 알리기에 나섰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가족과 자식을 위해 ‘코리안드림’을 실천했다면 우리는 부모들의 피와 땀으로 한국 사회 진입의 티켓을 갖고 ‘신(新)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있다.”(예동근 부경대 교수·지린 성 융지·永吉)

조선족 3세대들은 한국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조선족 사회는 한국에 대한 동화가 아닌 화합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모두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화합하지만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의 자세와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성일 동서대 교수·지린 성 룽징·龍井)

이 같은 고민은 조선족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겉돌고 있다는 의식이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조선족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있지 않다. 아니,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고 다가오려고 하다가도 우리 뒤에 있는 중국의 거대한 그림자에 놀라 움츠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한국 간 교량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김성휘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지린 성 훈춘·琿春)

최연 교수는 “한국에서 산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과 중국 어디에서 살 거냐”는 지속적인 물음을 갖는다고 했다. 한국이나 한국인들이 특별히 차별하거나 불편하게 한다기보다 무의식중에 같은 울타리에 있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세대 조선족’의 선구자 격은 1995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한국에 온 한홍석 베이징 소장(59·전 광운대 교수). 그는 베이징대(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지린 성 정부대외경제무역위원회 정책과 과장을 지내다 일본 게이오대(경제학 석·박사)를 거쳐 한국에 왔다. 한 박사가 한국에 올 당시 일부에서는 “조선족에도 저런 인재가 있나” 하는 시각도 있었다고 한다. 한 박사는 “중국에서 받은 학위도 디스카운트해서 볼 정도로 홀대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조선족들은 한반도의 혈통을 가졌으면서도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처지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고, 한국은 고향이고 고국이지만 아직까지 덜 받아들여지는 등 두 곳 모두에서 ‘비주류’인 이런 ‘숙명적 이중성’에 피해의식만 가질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자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족’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없는 것이 조선족들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한국 내 조선족 지식인들은 우리들의 시각으로 조선족 100년사를 정리해 책으로 만들고 비상업적 동인지도 발간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족 대표 교육기관 지린성 연변大 한족출신 장융즈 초대 재한 학우회장 ▼

한국 내 조선족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위상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 소재 연변대(延邊大) 동문들의 국내에서의 튼튼한 네트워크 구축이다.

1949년 조선족 출신 주덕해(朱德海)가 설립한 연변대는 대표적인 조선족 고등교육기관. 개교 이래 지금까지 13만여 명을 배출했으며 졸업생 중 2만여 명이 한국에 와 있다. 2만여 명 중 한국인 유학생 5000명가량을 뺀 약 1만5000명이 기업과 학계 법률계 등 한국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조선족 교포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26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연변대 재한 학우회 창립 기념식을 가졌다. 연변대 해외 학우회는 미국 일본 대만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다. 연변대 출신들은 중국 내에서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하얼빈(哈爾濱) 다롄(大連) 등 전국에 학우회를 두고 있다. 재한 학우회 창립 행사에는 박영호 연변대 총장, 김병민 연변대 학우총회장 등이 참석했으며 중국 전역에서 온 80명가량의 동문이 자리를 함께했다.

재한 연변대 동문의 대부분은 조선족이지만 임기 4년의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인물은 한족인 장융즈(張永志·44·사진) ‘상영(祥永)국제’ 사장.

서울 종로구 사직로 회사 사무실에서 8일 만난 장 회장은 조선족 후보 10여 명과 경합한 뒤 연변대 총장 주재의 회의에서 유일한 한족후보였던 자신이 선발됐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등의 경력과 그동안 연변대와 한국 내 동문들에 대한 기여도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장 회장은 말했다. 장 회장은 “연변대 재학생이 약 2만 명이지만 현재는 조선족 비율이 40%가 안 될 정도로 줄었다”며 “연변대 한족 동문도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가 고향인 장 회장은 연변대 조선어학과(1992∼1996년) 졸업 후 모교에서 4년간 강의하다 1999년 7월 한국에 왔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대우경제연구소 동화건설 등에서 일했다.

2011년 말 재한국 중국 유학생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영국제’를 설립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위탁 업무인 유학생 귀국증명서 발급, 졸업생 취업컨설팅 등을 하고 있다. 장 회장은 “학우회는 앞으로 학우들 간 교류 활성화는 물론이고 중국과 한반도를 잇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조선족#강광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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