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그 사건 그 후]<10>타블로 학력위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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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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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스탠퍼드大 졸업 확인” 해피 엔딩?… 타블로 “언론-대중이 두렵다” 새드 엔딩?
타진요2 “그래도 못믿겠다” 네버 엔딩?

4일 오후 6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미국 스탠퍼드대 한국총동문회에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영문과 98년 입학, 이선웅입니다,” 1년 넘게 이어진 학력위조 논란에 시달렸던 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였다. 이날 타블로는 “예전에는 1만 명 관객 앞에서 노래를 하더라도 하나도 안 떨렸는데 이제는 100여 명 앞에 서는 것조차 떨린다”며 “도와주신 동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짤막한 인사만을 남긴 채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난해 11월 ‘스탠퍼드대 졸업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타블로의 이름이 없다’는 한 누리꾼의 주장으로 시작된 타블로 학력위조 논란은 올 10월 경찰이 직접 타블로의 졸업 사실을 확인해 발표하기까지 1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경찰 수사로 학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타블로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 고개 숙인 피해자

“언론이 두렵습니다.” 타블로는 세 차례의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 운영자 김모 씨(57·ID 왓비컴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타블로는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과장된 자막으로 옮겨지면서 누리꾼들의 학력 위조 의혹을 더 자극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MBC ‘무릎팍도사’에서 “글을 잘 써서 스탠퍼드대에 들어간 것 같다”고 했던 것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없이 글 하나만으로 입학’으로,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최우수로 졸업했다’고 한 말이 ‘수석졸업’으로 바뀌었다는 것.

사건이 종결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타블로는 언론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15일 자신의 집 앞에서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기자와 만났지만 끝내 말문을 열지 않았다. 박호상 서초서 사이버수사팀장은 “타블로가 9월 첫 경찰 조사에서 ‘내가 죽어야 이 모든 게 다 끝난다’고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며 “그렇지만 최근 통화에서 담당 형사에게 고맙다고 하는 등 다소 여유를 찾은 것 같아 안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블로의 한 측근은 “타블로가 당분간 연예계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더 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당신이 게임에서 이겼소’

‘타진요’ 회원들에게 ‘대장 왓비(컴즈)’로 불리며 논란을 주도했던 김 씨는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 ‘물러나겠다’는 글을 카페에 올린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1980년대 말 친인척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 간 김 씨는 현지에서 의사로 일하는 두 딸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딸을 의대에 진학시키는 과정에서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신은 외롭고 고달픈 이민생활을 하는데, 타블로는 상대적으로 좋은 형편에서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분개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미국 시민권자인 김 씨에 대해 미국 사법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계획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누리꾼 18명은 경찰 조사를 마치고 이 중 14명이 기소돼 현재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10대 여고생부터 50대 남성까지, 무직자에서 대학생, 회사원, 치과의사에 이르기까지 연령층과 직업이 다양했다. 일부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당수는 이번 사건을 하나의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타블로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매일 카페에 로그인해 타블로에 대한 새로운 공격 포인트를 찾는 데서 재미와 희열을 느꼈다는 것.

타블로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강호의 표종록 변호사는 “50대 초반의 누리꾼이 ‘당신이 게임에서 이겼소’라고 말했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며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 높은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을 철저하게 무너뜨린 끔찍한 사건을 이들은 고작 인터넷 게임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충모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은 “자신의 의견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자기 확신적 편파 현상’”이라며 “오랜 기간 지나치게 편향된 정보만을 수집해오다 보니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뒤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원조 타진요가 경찰에 의해 강제 폐쇄된 후에도 타블로를 못 믿겠다는 일부 누리꾼이 ‘타진요2’를 만들어 억지 주장을 계속 펴는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타블로 사건을 담당한 진영근 서초서 수사과장은 “타블로 사건은 ‘사이버 살인 미수’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 행위인지를 보여줬다”며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이 강화되는 등 국내 인터넷 문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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