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48>종로 동림매듭박물관 심영미 관장

  • 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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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에게서 솜씨를 전수받아 40년이 넘도록 ‘매듭의 길’을 걸어온 동림매듭박물관의 심영미 관장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노리개를 내보이고 있다. 김재명  기자
시아버지에게서 솜씨를 전수받아 40년이 넘도록 ‘매듭의 길’을 걸어온 동림매듭박물관의 심영미 관장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노리개를 내보이고 있다. 김재명 기자
“매듭 짓다 부부 인연까지 맺었죠”

시아버지께 비법 배워 이젠 며느리에 전수

“풍성하게 달린 술은 한국 매듭만의 아름다움”

최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북 전주시로 돌아간 조선 태조 이성계 어진(왕의 초상화, 보물 제931호)의 매듭을 작업한 심영미(62) 동림매듭박물관 관장. 원래부터 눈이 건강하지 못했는데 무리하게 작업해서인지 결국 보름여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박물관을 찾은 23일, 그는 또 송곳과 실을 들고 매듭을 만들고 있었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색부터 최종 마무리까지 내 손을 거쳐야 안심이 돼요. 의사가 무리하지 말고 밤에는 절대 작업하지 말라고 했는데 매듭을 알리는 전시회가 있다고 하니 또 빠질 수는 없잖아요.”

심 관장은 급하게 또 새로운 매듭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의 실은 심 관장의 손을 거쳐 서서히 작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 매듭으로 만난 가족의 인연

심 관장에게 ‘매듭’이란 가족의 인연을 맺고 또 가족 사이를 돈독히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던 심 관장은 열아홉 살 때부터 이웃 어른으로부터 친구들과 매듭짓는 법을 배웠다. 유달리 솜씨가 좋아 “참 예쁘게 잘한다”며 곧잘 칭찬을 받던 심 관장은 그 댁을 드나들다 셋째 아들과 결국 부부의 인연까지 맺었다.

그 뒤 시아버지로부터 정식으로 솜씨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으나 잊지 못할 사연도 한 보따리다.

“매듭에 쓰이는 은박지를 시아버지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워 담배 피우는 친정 오빠들에게 담뱃갑의 조그만 은종이를 얻어다 썼죠. 친정 오빠들이 저 때문에 담배 엄청 샀어요.”

시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재주를 지금은 며느리에게 전수하고 있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아무리 가르쳐 달라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매듭을 배우고 싶어 여기저기서 어깨너머로 익히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난 후, 본격적으로 며느리에게 매듭을 가르치고 있다.

“혹시나 나 때문에 억지로 배우는 게 아닐까 해서 가르쳐 달라는 것도 거절했는데 정말 열심이더라고요. 며느리가 가업을 이으려고 하니 다행이지요.”

심 관장은 매듭의 길에 들어선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재미있어서 한 거니까요. 특히 매듭을 짓고 있으면 정신이 통일되고 머리가 맑아져요. 잡념이 하나라도 있으면 금방 잘못되는 게 매듭이거든요.”

노리개나 주머니에서 자수가 주인공일지 몰라도 그걸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매듭이라며 심 관장은 매듭의 매력을 설명하기를 멈추질 않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밤에 시간 나면 매듭 한번 배워보세요.”

○ 북촌 아담한 한옥에 매듭이 가득

동림매듭박물관은 서울 종로구의 북촌 한옥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고등학교 왼쪽으로 꺾어 다시 한 번 왼쪽으로 빠져 쭉 들어가다 보면 아담한 한옥들을 지나 박물관을 발견할 수 있다. 작고 아담한 박물관에선 한옥 특유의 매력이 진하게 풍긴다. 이 때문에 동림매듭박물관은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일본 NHK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박물관에는 심 관장의 땀이 가득 밴 작품들이 한가득 있다. ‘수박쥐 쌍봉술 삼작 노리개’부터 홍색 청색 주머니, 등유소(등의 네 모서리에 다는 매듭)까지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다 보면 눈이 즐겁다.

심 관장은 “풍성하게 달려 있는 술은 우리나라 매듭만의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한다.

매듭을 체험할 수도 있다. 동립매듭박물관에서는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직접 매듭을 체험하며 재미를 느끼도록 잠자리 모양 매듭이나 목걸이 매듭 등 간단한 매듭을 가르쳐준다. 30분에서 1시간이면 내 손으로 매듭 하나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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