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문화&사람]<44>고양 배다리박물관 박상빈 관장

  • 입력 2008년 9월 29일 03시 01분


술도가의 전통을 5대째 이어가고 있는 박관원(왼쪽) 상빈 씨 부자. 이들이 박물관 전시실에서 유물 수집 때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다정하게 웃고 있다. 이동영  기자
술도가의 전통을 5대째 이어가고 있는 박관원(왼쪽) 상빈 씨 부자. 이들이 박물관 전시실에서 유물 수집 때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다정하게 웃고 있다. 이동영 기자
“술도가 명맥 못끊겠더군요”

건축공학가 길 접고 5대째 이어받아 박물관 문열어

4대째에서 전통주의 대가 끊길 뻔했던 술도가. 고령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신이 길을 다시 찾은 건축학도였던 5대손. 이들 부자는 다시금 이어지게 된 술도가 역사를 짚어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배다리박물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찮아 보이던 됫박과 술 담던 옹기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경기 고양시의 지명인 주교(舟橋)를 우리말로 풀어 쓴 배다리박물관은 전통주의 역사와 가치, 제조 과정과 제조 도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통주 제조과정 한눈에

5대를 잇게 된 박상빈(45) 관장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가로 일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 아버지 박관원(76) 씨가 일본의 유명 주류회사 박물관을 보고 돌아온 뒤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저는 건축가로 일하고 나중에는 술도가를 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일본 주류 박물관을 보고 오시더니 ‘일본에선 100년 넘은 소소한 유물까지 잘 전시하고 있는데 우리는 술도가 역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혼자서라도 술도가 박물관을 세워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고 저도 인생을 바꾸기로 했죠.”

그때부터 전시물을 모으기 시작해 전국을 돌며 누룩 분쇄기, 각 지방의 전통주 포장용기, 대형 옹기 등을 수집해 2004년 박물관을 개관했다.

1915년부터 이어진 술도가 명맥도 이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부친으로부터 소줏고리에 불 때는 법부터 배우며 전통주 제조법을 익혔다.

누룩과 쌀로 막걸리를 만들고 그 막걸리에 다시 효소를 넣어 청주로 만들고, 그 청주를 소줏고리에 얹어 증류 과정을 거치면 전통 소주가 된다.

지난달엔 직접 전통 소주를 개발했다. 이름도 붙였고 나뭇잎 모양의 술병도 디자인했다. 술도가 창립을 기념해 매달 1915병만 생산해 판매할 생각이다.

朴前대통령 자주 찾아

19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박관원 씨가 만든 막걸리에 매료돼 이 술도가의 막걸리를 수시로 가져다 마셨다. 이를 기념해 박물관 2층에는 박 전 대통령이 막걸리 마시는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누룩을 만들어 부수고 고두밥을 지어 발효시키는 등의 전통주 제조 과정도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3000, 5000L짜리 청주 보관용 목재통을 보면 힘겨운 시기였으나 전통주가 백성들에게 사랑받던 시절임을 알게 한다.

말 위에서 마실 때 쓴다는 마상주잔이나 모양에 따라 붙여진 호리병, 자라병 등 특색 있는 술잔과 술병도 전시공간을 빛내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는 박 관장이 직접 전통 소줏고리에 불을 지펴 소주 내리는 모습을 선보인다. 이들 부자가 만든 막걸리 청주 소주 등을 시음해 볼 수 있다. 입장료는 없다. 단체로 예약하면 설명을 해준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