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31>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코멘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75)는 문인초상화와 애장품 등 문학사의 귀중한 자료 9000여 점을 모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영인문학관을 열었다. 왼쪽 벽에 걸린 작품은 화가 천경자 씨가 그린 시인 노천명의 초상화. 김경제  기자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75)는 문인초상화와 애장품 등 문학사의 귀중한 자료 9000여 점을 모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영인문학관을 열었다. 왼쪽 벽에 걸린 작품은 화가 천경자 씨가 그린 시인 노천명의 초상화. 김경제 기자
《“일단 내가 개관을 해야 누군가가 이어서 하지, 아니면 이 귀중한 물건이 다 그냥 버려질 것 같아서 고집을 부렸죠.”

영인문학관은 2001년 문을 열었다 강인숙 관장이 인후암 수술을 받은 지 한 달이 안 될 때였다.

병원에서는 성대에 무리가 가니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지만 박물관 개관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문을 연 지 8년째. 강 관장은 여전히 바쁘다. 귀중한 자료를 하나라도 더 문학애호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문인의 애장품 보면 문학이 가깝게 느껴져”

박두진 자화상-박완서 딸 해산바가지 등 9000여점

귀중한 자료 방치 안타까워 투병 중에 전시관 개관

○ “문인들의 물품 누가 모으지?”

박물관에 욕심을 내게 만든 계기는 남편인 이어령 씨가 연 한국문학연구소의 춘원 이광수 유품 전시회(1969년)였다.

적지 않던 유품이 전시회 뒤 사라지자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강 관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친일 행적은 안타깝지만 국내 문학사에 읽을 수 있는 근대 문장을 선보인 첫 작가가 춘원이죠. 그렇게 금방 흔적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누군가는 문인의 물건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본격적으로 물품을 모은 건 1972년 이어령 씨가 문학사상을 창간하며 야심 차게 문인 초상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부터.

표지를 장식한 저명 화가의 문인 초상화를 시작으로 육필 원고, 부채 등 문인 자료와 애장품을 모았다. 어느새 수장고와 집을 가득 메웠다.

수많은 소장품을 ‘김상옥 시인 유품·유묵전’ ‘지필묵의 문화사’와 같은 기획전에서 선보였지만 아직 그에게는 갈 길이 멀다.

“일본에 갔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지요. 문인의 기념관은 물론이고 백화점에서도 문인 애장품을 전시하더라고요. 어떤 문인의 애장품을 전시하느냐가 백화점 판매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문학이 사람들 가까이에 있더군요.”

○ 문인의 얼굴이 있는 박물관

이어령 씨와 강 관장 부부의 이름을 한 자씩 딴 영인문학관. 5월 종로구 평창동 474-27에서 같은 동 499-3으로 이사해 산 윗자락에 있던 옛날보다 가기 쉽다.

문인초상화와 자화상 200여 점, 선면화 270여 점, 서화 300여 점, 문방사우 300여 점, 사진, 문인 사인북과 애장품 등 국내 문학사의 귀중한 자료 9000여 점이 전시될 날을 기다린다.

문학사상의 표지를 장식했던 초상화는 영인문학관만의 자랑. 교과서에서 문학작품으로만 접하던 이상 최남선 윤동주 노천명 김광섭 김승옥의 초상화를 보며 그들의 이미지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가 김병종 씨가 그린 아내 정미경 씨의 초상화, 조각가인 박영하 씨가 동판으로 만든 아버지 박두진의 자화상도 전시하고 있다.

초상화를 따라가며 누가 누구를 어떻게 그려줬는지 생각해 보는 일도 흥미롭다.

문인의 애장품도 적지 않다. 소설가 박완서의 단편 ‘해산바가지’의 모티브인 첫딸의 해산 바가지와 김영태 박현서 등이 쓰던 찻잔과 다기를 만날 수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