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우리곁으로] D-17 새물을 기다리는 사람들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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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청계천 고산자교 밑 버들숲에서 청사랑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른쪽의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손혜진 씨. 손 씨 옆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람이 김종현 씨. 원대연 기자
12일 오후 청계천 고산자교 밑 버들숲에서 청사랑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른쪽의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손혜진 씨. 손 씨 옆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람이 김종현 씨. 원대연 기자
《물은 사람을 부른다. 그래서 물이 있는 곳은 도시가 됐고 청계천은 서울을 담은 채 흘렀다. 청계천은 6·25전쟁 직후 사대문 안의 각종 오물이 모이는 하천이었다. 둑 곳곳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루핑지붕의 판자촌은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근대화에 희생돼 콘크리트로 덮이기도 했지만 여기에 터를 잡고 수십 년간 생업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복원되는 청계천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청계천은 삶의 일부이자 전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청계천에 다시 물이 흐른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소생(蘇生)’을 의미한다.》

“청계천은 제 청춘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청계천 복원 소식을 접한 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뛰더군요.”

청계천을 아끼는 2060세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청사랑) 회원. 청사랑은 복원된 청계천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올해 8월 발족한 자원봉사단체다.

멤버 중 김종현(63) 씨는 청계천을 방문한 국내 관광객들에게 역사, 문화유적을 설명해 주는 ‘지식 나누미’ 역할을 맡게 된다.

고교 지리교사로 1997년 퇴직한 김 씨는 휘문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9년의 청계천을 이렇게 기억한다.

“장마로 큰비가 오고 난 뒤의 청계천 물은 오염물질이 모두 쓸려 나가 대단히 깨끗했어요. 집에 오는 길에 수표교(현재 청계3가)가 있었는데 다리 밑에서 세수를 하곤 했죠. 얼마나 시원했는지 몰라요.”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초반 청계천 오간수교(을지로6가) 근처 천변에서는 해병대 작업복을 염색하는 작업이 많이 이뤄졌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어요.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 해병대 작업복을 많이 입고 다녔죠. 청계천은 일반 시장보다 염색 비용이 훨씬 저렴해 자주 애용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기를 만났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온몸이 시커멓게 ‘염색’돼서 한동안 고생 좀 했죠.”

“조선시대 청계천은 양반과 기생들의 데이트 장소였다고 합니다. 이런 청계천이 이젠 가족들의 산책로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바뀌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요.”

60대인 김 씨에게 청계천이 ‘추억의 공간’이라면 20대 손혜진(24·취업준비생) 씨에게는 ‘추억을 만들어갈 공간’이다.

손 씨는 전공(영문학)을 살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청계천을 홍보하는 ‘외국어 통역’을 맡게 된다.

“어학연수를 갔던 캐나다는 도심 곳곳에 공원이나 호수가 잘 조성돼 있는데 한국은 그런 공간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런데 캐나다에도 도심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하천은 없어요.”

김 씨와 손 씨 등 청사랑 회원은 9000여 명. 이들은 청계천이 일반에 공개되는 10월 1일부터 본격적인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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