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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5년 거문고 명인 이수경 씨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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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5년 거문고 명인 이수경 씨 숨져

입력 2009-03-12 02:59수정 2009-09-2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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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비껴놓고 유현(둘째 줄) 휘감아 농현할 때는 속삭이는 물결처럼 출렁거렸고 대현(네 번째 줄) 짚고 현침 밑을 향하여 술대가 한 번 움직이면 그렇게 웅혼할 수가 없었다.”

거문고 명인 이수경(1882∼1955)의 연주를 여러 차례 직접 들었던 장사훈(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 제4기생)의 회상이다.

이수경은 열 살 때부터 장악원 악공(樂工) 생활을 시작했다. 의무적인 세습제도 때문이었다. 이수경의 조부 이인식은 피리 명인으로 조선 헌종 때 궁중악사였고 아버지는 고종 시절 피리로 궁중악사를 지낸 이원근이다.

이수경은 거문고와 정재(궁중무용)부터 배웠다. 그때는 악보도 없이 한두 곡조를 배워 평생 그 곡만 연주하곤 했으며 악기도 한 종류만 다루는 게 보통이었다. 그의 특기는 ‘영산회상’.

‘재미있는 국악 길라잡이’에서 저자 이성재는 이수경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장사라고 불릴 만큼 체격이 크고 힘이 좋아 양손에 쌀을 한 가마니씩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커다란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거문고 소리는 절묘했고 그 커다란 덩치로 추는 춤 또한 일품이었다고 한다.”

이수경의 거문고 탄법은 이왕직 아악부(현재 국립국악원 같은 역할) 제5대 아악사장을 지낸 함화진과 대조되는 연주기법으로 당대에 쌍벽을 이뤘다. 이수경은 호방하고 길게 여운을 남기는 탄법이었고 함화진은 곧고 간결하게 연주했다.

이수경은 연주뿐 아니라 악기 제작으로도 유명했다. 손자 이동규는 한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거문고도 즐겨 타셨지만 오동나무를 구해 직접 거문고를 만들기도 하셨다. 어린 나와 명주실을 잡고 거문고 줄을 꼬는 걸 좋아하셨다.”

이수경이 만든 악기는 이왕직 아악부에 공급됐고 품질도 뛰어났다고 한다.

악공으로 시작한 이수경은 전악·아악 수장을 거쳐 아악사까지 승진했고 1939년 사임했다. 이후 후진 양성에 힘을 쏟다가 1955년 3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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